The Kichen :: 2007/09/12 22:54

아침에 해부실습 세시간만 하고 수업이 끝나버렸다. 간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
정원이랑 벼르고 벼르던 더 키친에 가보기로 했다. 맨날 맛있다는 소문만 들었다.
제중학사 주변에 있다는 정보 하나만 믿고;; 무작정 제중쪽으로 갔다.
첨엔 제중 입구 맞은편에 어떤 카페 들어간 다음 어 여기가 아닌거 같아? 이러고 다시 나오고;
어학당까지 올라갔다가 아닌거같아~ 이러고 다시 내려오고.. 여튼 이런 삽질 끝에 드디어 도착.
난 왜 "국제학사 1층" 이라는 말을 "어학당 1층" 이라고 알아먹었을까.
제중학사도 기숙사. 국제학사도 기숙사인걸. 바보 -_+

초록빛이 우거진 오솔길 하나만 지나왔는데 분위기가 확 다르다
외국인들도 무지 많고(하긴 외국인들 사는 기숙사니 당연하지;) 메뉴도 다양하고.
커피 스무디 샌드위치 파니니 스파게티 피자 등등등.
여기 스파게티 맛있다는 소문 들어서 그걸 시켰다. 정원이는 샌드위치. 그리고 무한리필되는 소다.
(신선한 과일주스에 굶주린 두 자취생은 환타 파인맛과 포도맛을 맛있어하면서 즐겼다지...)

아는사람 우글우글대는 구내식당이나 병원푸드코트를 벗어나 여기 왔더니 꼭 여행온 기분이었다. 행복해.

...그런데 다 먹고 일어서는 순간 다음 사람이 우리 자리에 앉았는데, 얼핏 봤는데,
헉 짤튀님 닮았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이 마주쳤고 난 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뒤에서 자세히 관찰했는데 확실히 짤튀였다. 아내와 딸과 함께.
1. 아니 해부실습실의 기억을 잊으려 왔는데 여기서 하필 만난단 말야??
2. 아. 짤튀님에게도 가족이 있었구나. 신기하다...

이제 내일 실습하고 추도식 하면 우리 카데바랑도 안녕이다.
오늘은 반반의 확률로 온전한 하체(?) 혹은
허리에는 트랜스버스컷, 골반쪽은 정확히 정중으로 사지탈컷이 가해진 카데바가 걸리는데
우리조는 아주 고맙게도 두번째에 당첨되었다. 게다가 여자분이라서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후후
플러스 옆 조에서 구조가 좀 더 많은 부분을 가져가버려서(좋은건가?-_-) 정말 할 게 없더라.
우리꺼에는 자궁도 거의 안남아있고 방광만 보이고 뭐 각각의 터널;들은 다 저쪽으로 가버려서...

실습하는 동안 가끔 카데바에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주로 그 카데바의 외모나 특징을 살려서.
어차피 검사 안하는 정인혁샘 실습. 그냥 심심해서 속엉덩동맥 가지들 여기저기 파헤치다가 무심결에 물어봤다.
"혹시 우리 카데바에도 이름 있어?" "망고할머니요." 곧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왜?" 라고 묻는 순간 바로 깨달았다... 아. 정말 딱이다...

울 할머니는 사인이 동맥경화다. 예전에 이름만 들었을 때는 심장쪽 대동맥부터 딱딱해지는 건가? 하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심장부분 할때 보니 대동맥은 부들부들했다.
그런데 그 밑에 가슴대동맥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경화"다. 장난 아니다. 두꺼운 플라스틱 빨대같다.
혈관을 좀 움직이고 들어내면서 가지들을 찾아야 하는게 이게 꿈쩍을 안한다. 에휴.
오늘도 동맥가지 찾는데 애먹으면서 에이 몰라 이러고 좀 하다가 던져버렸다. 넷이서 돌아가면서 그랬다.

내일도 오전수업밖에 없다. 어차피 결국 밤까지 자학실에 있을테니 별 차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좋아.

2007/09/12 22:54 2007/09/1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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