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 :: 2008/08/01 00:32

여름방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블로그에 돌아왔다
그동안 돌아보지 않은 내 블로그에는 먼지가 풀풀 나는 것만 같다
애들끼리 소위 농담으로 'burn out' 된다고 말하는, 훨훨 타서 하얀 재만 남아버린 상태로
그렇게 무기력하게 3주동안 서울과 순천을 오가며 시간은 지나갔다

시험과 병원에 매달리는 동안 한 학기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남은 거라곤 엉망인 성적 뿐이고 나머지 내 전체 삶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지표인 '학교'와 '성적'에 얽매이는 사람들은 그래도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나는 점점 내 색깔을 잃어가고 빛바랜 모습으로 변해가지만
그러다가도 정신을 차리려 몸부림치면서 원래 모습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기억이 희미해진다.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 나았다는 건 알겠는데.
과거의 온전했던 내 모습과 현재의 조각조각난 자아 사이에서 뒤섞여가며 내 정체성은 마블링된다

날 도와주려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지우고 싶은 기억과 모습들을 보고
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날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말들에서 상처를 입는다
다른이에게 하루하루 똑같은 수많은 날들이 나에겐 힘들고 지치고 역동적인 하루하루가 되면서
하루가 일주일 일주일이 일년같이 지나가고 해놓은 건 없는데 애어른같이 변해가고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여행을 갔어야 하는데.
가족도 병원도 학교도 날 방해하지 못하는 외국으로 떠났어야 했다
학교 다니느라 너무 힘들어서 여행 계획할 시간도 없었거니와, 간다고 해도 보내주지도 않았을거다
결국 대신 집에서 병맥과 와인과 함께 하루종일 미드를 보고 있는데 역시 여행만 못하다
겨울에는 꼭 인도로 떠나야지. 비행기 티켓 사면 끝이지 뭐.

난 아직 다시 학교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았는데 개학이 다가오고 있다
2학기에는 이렇게 대책 없이 학교 다니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런저런 방법들을 생각해 보지만 어떤 게 제일 좋은 방법인지 정확히 확신이 서진 않는다
제일 맘에 드는 건 병원을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옮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사람이 반대하고 있으니...
하지만 여태껏 학교 다니면서 얻은 뼈저린 교훈이 있다면,
무조건 교수님들을 믿지는 말 것, 그리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내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아서 두렵다

2008/08/01 00:32 2008/08/0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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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hj7564 | 2008/08/01 02: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그래도 블로그에서 다시보니 반갑네. ^^
    무슨 일있나 했엇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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