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 2008/02/22 23:05

본1이 끝나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분당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순천으로 내려와 며칠 동안 침대에 박혀 울고 나니 드디어 예전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온 거 같아서 좋았었다.
아무일도 없었던 듯, 더 이상 힘들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고, 행복했다. 한동안은.
최근 몇 년 동안 느껴볼 수 없었던 그런 편안한 느낌이었다.

계속될거라는 믿음 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한 줄기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이겠지.
그래도 조금은 더 오래 즐거워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일까'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그런 편한 시간들이 왔으면.
이젠 힘들다는 말 이전에 지겹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끝없는 숨바꼭질, 쳇바퀴돌리기 같은 시간들. 그저 견뎌야 하는 이어지는 시간들.

잠깐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내 원래 모습이, 한없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좋았다. 내 원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어서.
너무 오랫동안 내가 아닌채로 살아와서 나도 내가 어떤 모습인지 헷갈렸으니까.

이번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다음 주말에 가도 되는데 굳이 이번 주말에 가겠다고 하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아빠가 너무 서운해 하셔서 결국 다음주로 미루긴 했지만.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갑자기 서울로 가겠다고 했던 건...
난 내 상태가 나빠지면 무의식적으로 사람들과, 특히 부모님과 떨어져서 혼자 있으려고 한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그러는 거 같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곧 시작되는 본2. 지금까지 적었던 생각들이 다 필요없어지도록,
단순무식하게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이 모든 게 다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가달라고 하면 무리겠지만.

이번 방학은, 단 한가지 만으로도 소중했다.
잠시나마 내 원래 모습으로 살아볼 수 있어서. 내가 되어볼 수 있어서.

2008/02/22 23:05 2008/02/22 23:05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