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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2. 7

인형이 기분 나쁜 이유가 뭐냐고 한다면

그건 인형이 인간의 닮은꼴이며

결국 인간 자신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간단한 물질과 장치로

환원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

결국 인간이라는 형상은 본래

허무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



생명이라는 현상을 밝혀내려 했던 과학도

결국 이 공포에 한몫을 더하게 되었다

자연이 계산 가능하다는 신념은

인간 역시 단순한 기관부품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지...


‘인체는 스스로 태엽을 감는 기계이며

영구운동의 살아 있는 견본이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는걸!



..‘새의 피에는 슬퍼하지만 물고기의 피에는 슬퍼하지 않는다’

인형들에게도 목소리가 있다면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외쳤겠지


================================================


극장판답게 빠른 속도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엄청난 배경지식을 요구해서

처음엔 계속 헤매게 만들지만...

사실 처음에 봤을 땐 보다가 졸기도 했다 ㅋㄷ

그치만 두번째 볼 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음.

갠적으로 공각기동대보다 훨 더 났다. 스토리도 영상도.

그리고 애니 보는 동안 계속  흐르는 그 멜로디,

뭔가 아스라한 저 기억 너머로 날 데려갈 것만 같은 느낌.

여러 번 볼수록 점점 더 빠져드는 애니.

한 번 두 번 볼 때마다 느낌과 생각들이 달라진다.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2005/11/15 18:00 2005/1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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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3. 12

극연에 대한 환상을 가져와서...
공연을 한번쯤 보고 싶었다. 저번 워크샵은 어쩌다 놓치고.
하얀샘에서 간식먹다가 창문 밖 게시판에 붙여진 포스터 발견.
처음엔 "시련"이길래 어느 극회가 하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봐야겠다 생각했다. 본2 본3 선배들이 시련이야기 하는거 많이 들어서 너무너무 궁금했으므로. 극연의 작품이란 걸 알고 나서 더 많이 보고싶어졌다. 고로 시루와 성화와 정원이와 같이 나섬.

무악극장 리모델링하고 처음 들어가봤다.
지난 여름의 그 낡고 지저분함은 다 사라지고 깨끗한 무대.
무대 바로 앞에 관객의 의자가 있고...
정말 소극장 같았다. 의대강당과는 또 다른 느낌이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연 내내 하품했다.
성화랑 지루하다고 속닥거리면서 -0-
아아 첫 막은 뭔가 좋았는데...
잘 하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흐름을 만들어낼 때는 시간 지나는 줄 모르고 극에 빨려들어갔었다. 무대라는 그 텅 빈 공간은 배우가 만들어내는 색깔있는 공기로 채워지면서 관객이 그 색깔에 공감하도록 이끌어내나보다. 공연 내내 한번도 흐트러짐 없던 에비게일이나 이성적이고 강직해 보이는 존 프록터, 마치 실재하는 인물처럼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만들어낸 엘리자베스, 이름 기억 안나는 감옥의 할머니...
그렇지만 두 목사분들 으으 보는 내내 답답하고. 치버라는 사람은 마치 책을 읽는 것 같고. 극은 처음엔 갈등이 시작되나 하다가 재판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집중력을 잃어 마지막에 끝 같지 않게 끝나니까 참 허무하던데. 속도감 있게 전개했다면 훨씬 재밌었을 대본이라 생각했다. 다들 한마디 하고 한참 있다가 한마디 하고... 게다가 대사를 자꾸 틀려서 불안했다. 또 틀리면 어떡하지 당황해서 더 실수하지는 않아야 할텐데 하면서. 대사를 버벅대면 흐름이 확 깨져버린다. 나만 그런가.

소품이 너무 예뻤다. 그 벽난로는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멋있어서 내 방에 놓고싶을 정도였다. 벽난로 옆에 걸려있는 빗자루도 마치 마법배달부 키키가 타고다니던 마법빗자루 같고, 메리가 만든 인형도 귀여웠다. 다들 소품이 예쁘다고 했다. 나도 동감.

연극이 끝나니 열 시가 다 된 시각이다.
아아 마치 강의를 들은 것처럼 피곤했다. 졸려.
노트에 쓰고 싶었는데, 졸리니까 일단 여기에...  
2005/11/15 17:36 2005/11/15 17:36

나를 드러낸다는 것

from Experience 2005/11/15 17:33

2004. 3. 4

현사심 시간에 교수님이 그러셨다.
자아정체성 발달 과정 중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남에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평가에 민감해진다고
내가 남에게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 신경쓰게 된다고.
싸이월드 같은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생각을 늘어놓고
이런 것들도 타인에게 자신을 내보이기 위함일수도 있다고.

근데 말이지.
난 내가 아는 사람에게,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날 좀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이걸 만지작거린다.
물론 내 생각들을 발산하려는 욕구도 있지만...
그래서 난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내 홈피에 왔다가면
그것 참. 기분이 굉장히 묘해진다.
랜덤홈피 설정도 비공개인데 어떻게들 찾아오는지 원.
싸이 미니홈의 헛점이다.
그래서 요즘은 왠만한 건 다 1촌공개로 해놓지만...
분명 캠프에서도 강의실에서도 그 어느 모임에서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오는지. 참 궁금하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미니홈을 보면 재밌나? -_-;;
아아 나같이 귀차니즘에 빠진 이는 이해가 안 가 ㅎㅎ

이벤트에 두번째로 모르는 사람이 당첨되서
(그리고 말도 없이 사라져버려서;; 방명록이라도 남겨주면 안되나)
묘한 기분에 주저리주저리.

2005/11/15 17:33 2005/11/15 17:33

연기에 대하여

from Experience 2005/11/15 17:29
세란극회 윤태호 선배님이 쓰신 글.

어떠한 연극일지라도 연기의 중요성을 배제하긴 힘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연극을 볼 때에도 우린 연기에 대해서만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연극을 구성하는 것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 중 하나이고 누가 무엇을 연극으로 생각하건 간에 연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가장 큰 관건이 될 수 있을 거다.

연기라는 녀석은 정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오묘한 예술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연기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그렇다고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붙이며 연기를 마치 아주 고귀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도 아니될 것이다.

연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처음 연기를 하게 된 얘기를 해볼 수 있겠다. 신입생 시절 세미나를 하는 데 셰익스피어의 햄릿이었고 내가 맡은 역은 클로디어스였다. 나는 무대위로 올려졌고 아니 그전에 캐릭터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히스토리라는 걸 썼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캐릭터에 몰입하라는 연출형의 주문과 대사를 쳐야하는 것, 말투, 그리고 캐릭터 그자체...이모든 것이 어떻게 같이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몰입을 하게 되면 그건 바로 내가 그 상황에 빠졌다고 가정하고 그 감정을 느끼며 반응이 나오는 대로 표현하는 게 아닌가...그런데 이런 이상한 말투를 쓰면서 목소리도 크게 내면서 동작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걸 어떻게 해낸단 말인가?...어쨋든 혼란 속에 세미나는 올라가고 난 대사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채 애드립으로 겨우 겨우 버티다 내려왔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게 그래도 즐거웠다. ^^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부분이긴 하지만 난 거기서 먼가 힌트를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대사중에 "폴로니어스는 어딨느냐?"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폴로니어스를 살해하고 은폐한 햄릿을 추궁하는 대사였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난 화나는 감정과 말투와 발성과 버럭 소리지를 때의 관객들의 조용해짐을 기억한다. 그 모든것이 동시에 일어난 것인지 순서를 두고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연기를 하는 순간에 우린 수없이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그리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잘 해낸다. 하지만 물론 이러한 연기의 원리와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재능이상의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피터 브룩이 연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용한 예를 나도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줄타기를 하며 곡예를 부리는 곡예사가 있다. 이 곡예사는 절대 줄에서 떨어져서는 안된다. 그리고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줄위에서 멋진 곡예를 부리고 포즈를 취해야 한다. 능숙하지 못한 곡예사는 가끔 줄에서 떨어지거나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능숙한 곡예사는 언제나 줄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연기는 크게 감정과 표현 두 흐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구분은 연기를 넘 단순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며 두가지중 한가지에 치중한다느니 두가지를 동시에 추구한다느니 모두 맞지 않는 말같다.

물론 연기를 말로 표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게 말이라는 표현도구의 한계땜인지도 몰겠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렇게 연기를 나누어서 인식하는 것은 분명히 좋지 않다는 것이다.

연기에 있어서 단한가지의 진실은 연기는 무대행위라는 것이다. 모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한다고 가정했을 때 관객앞에 무대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면 그것은 연극의 연기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돗자리 하나를 펴놨다 하더라도 관객이 그걸 무대로 받아들이고 배우도 그것을 자신의 공간으로 인식했을 때 비로소 연기는 시작되고 연극도 성립한다.

연기라는 건 무대위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의 대상은 물론 관객이고...관객의 감정을 움직이고 이성을 움직이고 만족감을 주는 것이 바로 연기이다. 그러기 위해 배우는 캐릭터를 표현하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하기도 한다.

그럼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이 흔히 생각하는 연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아직도 멀었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에도 우리가 연기라고 부를만한 것이 아닌 많은 것이 존재한다. 감정의 절대적 몰입이라면 영화나 티비에서 볼 수 있고 서커스의 광대나 감정이 없는 인체 오브제나 서사극이나 부조리극의 연기등이 있겠다.

이런걸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작품이 주어졌을 때 연기에 선입견없이 그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배우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의 몸을 가장 적절한 위치에 둘 줄 알아야 하고 겉보기만으로 무엇을 표현하는줄 알아야 하며 자신의 연극과 거기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이해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감정과 표현이 중요하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단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배우는 무대에 올라 내려오는 그 모든 순간이 연기이다. 쉽게 말하면 연출이 하라고 하는 것을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이 연기이다.


연극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혹은 경험있는 배우들을 보면 그들이 한계와 막닥뜨리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요즘 연습하는데를 가보면 언제나 연출과 배우, 기획의 분위기는 험악하다. 연출은 항상 배우들에게 왜 변한게 없느냐고 하고 기획은 타고 있고 배우는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있다.

내가 예과 1학년때도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잘 안되고 있는데 먼가는 해야겠고 하지만 멀해야 좋을 지 모르겠고 그럴 때 주위사람들이 힘들어 하는게 보기 안쓰러웠다. 그래서 연극이 끝난 후 난 연극을 보러다니고 책을 읽고 하면서 날 갈고 닦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다시는 늪에 빠지고 싶지 않았으니깐....

그래서 연출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쨋든 이 얘기는 난중에 하기로 하고...

배우의 연기가 정체되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음...근데 사실 난 내 배우들을 보면서 정체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세히 보면 미세한 변화가 언제나 있고 난 그거라도 즐기며 연출을 할 수 있었다. 다만 퇴보는 있다. -.-;

일단 배우의 기본기가 늘어야 한다. 대배우는 무대에 서있는 것만 봐도 딱 알 수 있고 아무리 넓은 광장에 홀로 서 있다 해도 빛을 낸다. 그것은 엄청난 집중력과 사심을 비우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는 걸 말한다.

그리고 동작하나하나 손짓, 눈짓이 아주 정확하고 감정을 가장 적절히 표현해 낸다. 그리고 동작이 경쾌하고 템포가 있으며 크다...귀를 막고 봐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지저분한 의미없는 움직임과 필요없는 데 두는 시선, 꿈틀댐, 발을 땅에 가만히 붙이고 있지 못하는 것등이 초보의 연기다.

발을, 다음 발을 옮길 타이밍까지 참고 있지 못하고 뗏다 붙였다 하고 있는 것은 감정을 자신이 주체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말해준다. 집중이 흐트러 지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상황에 몰입되면 될수록 잔동작은 없어지고 관객은 그 배우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발성과 음색과 화법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연출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늘어야 한다. 자기의 캐릭터에 대한 의견 차이는 없는지, 장면에서의 역할에 대한 오해는 없는지.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동선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연기를 하다보면 처음엔 몰랐는데 자신의 동선이 연기하기에 엄청 불편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캐릭터가 변하고 있다거나 동선이 잘못되었거나 둘 중 하나겠다. 연출은 배우에게 연기하기에 불편한 데는 없는지를 항상 물어봐야 할 거고 배우도 그런 야그를 연출에게 야그해야 할 거다....

대사가 다 똑같이 들린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연기를 만들어 나갈때 상황속에 캐릭터를 집어넣을라구 하면서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캣취한게 아니라 기술적으로 연기를 만들어 나갔기 때문이다. 대사를 여기선 어떻게 치고 여기의 감정은 어떻구 하는 식으로 연기를 맹들어 봐야 대사는 같게 들리는 수가 많다.

상황을 좀더 느낄라구 해야 한다. 그러면 무대에 올라가 있는 동안 1초도 아쉬워서 열심히 연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마음을 비워야 한다. 절대 다음 대사나 연기를 생각하지 마라...대신 상대방의 말을 듣던지 관객의 반응에 반응해라...상대방의 말이 들리면 비로소 대사가 똑같이 들린다는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2005/11/15 17:29 2005/11/15 17:29

떠돌아다니는 생활

from Experience 2005/11/15 17:27
2004. 3. 10

고등학교때부터 항상 기숙사의 내 방에는 짐이 많다.
나보다 짐 많은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성화가 나만큼이나 짐이 많아서 깜짝 놀랬다ㅋ)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가든, 항상 맨 처음 이사했을때 드는 생각은
사람이 얼마나 쓸데없는 걸 많이 가지고 사는가 하는 것.
이부자리와 옷 몇개와 세면도구만 있어도 되는데 말야.
특히 어디로 며칠 여행을 떠날라치면
물론 깔끔을 떨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잘 때 입을 편한옷 하나-아예 첨부터 편한옷을 입고가도 되지 뭐
작은 세면도구세트 하나. 핸드폰과 충전기. 끝.
아 렌즈 끼면서부터는 렌즈케이스와 세척액도 챙겼다.
뭐 이정도면 작은 가방 하나에 충분히 들어간다.

그렇지만 새로 발붙인 곳에서 한참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걸로 내 방같이 꾸며보고 싶어진다.
낯선곳에 정붙이기 과정이랄까. 이것저것 포스터를 붙이거나,
예쁜 식기류나 인형이나 기타 잡다한 것들을 산다.
내 방 같다는 아늑함이 늘어남과 동시에 짐도 늘어난다.

그래서 들어올 때 딱 세 박스이던 집이 나갈 땐 두 배로 느는거다.

늘어난 짐들은 대부분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 것들이다.
청소기라던가, 토스터기, 커피포트, 겨울에 컴터할때 편한 무릎담요, 전기장판 등등...
(역시 대부분은 전열기구이다. 우리방 검열 들어오면 나랑 성화랑 벌점 나눠 가져도 둘 다 퇴사일거다 -_-)
내가 조금만 부지런하거나 덜 편하게 살면
없어도 되는 이런 "사치스런" 물건들.
내가 게으르다는 증거일까...

그래도 있으니까 좋긴 하다ㅋ 
2005/11/15 17:27 2005/11/15 17:27
울 학교 선배가 쓰신 글.
사회과학인가 전공하시다 이쪽 관련 논문쓰려고 의대 들어오셨는데
그 과정중에 아예 의사로 진로를 바꾸신;;

『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의사들 』  이수현 (세브란스병원 인턴), 청년의사 2004.12.06

  어렸을 때부터 allergic asthma, rhinitis, conjunctivitis, dermatitis, 심지어 exercise-induced bronchospasm까지 종종 경험했던 나, 요즘처럼 공기가 차가울 때면 어김없이 allergic attack이 찾아온다. Antihistamine을 몇 알씩 한꺼번에 먹어도 소용이 없다. 수술방에서는 마스크 속으로 흐르는 콧물과 재채기를 참기 위해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병실에 들어가면 갑자기 재채기를 하며 코를 훌쩍거리는 나 때문에 이식 환자들이나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은 꺼림칙한 눈치다. 인턴숙소의 공기가 탁하고 건조한 탓인지 항상 목이 잠겨 있다. 코도 킁킁, 목도 킁킁.

  둘러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한 달째 dry cough, hoarseness가 심한 한 내과 인턴은 chest X-ray,CBC 괜찮다는 말 하나를 믿고 그냥 버틴다. Crohn’s disease가 있는 동료인턴은 며칠째 watery diarrhea로 보기만 해도 dehydration 상태임을 드러내는 초췌한 얼굴로 유령처럼 병동을 달린다. 며칠 전 oncology 파트에서 일하는 한 인턴은 때늦은 나이에 chicken pox로 입원까지 했다. 자신이 일하던 내과 병동에 입원한 그는 갑자기 찾아온 여유에 몸은 편하지만 자신의 일을 대신하고 당직을 서는 인턴들에게 너무 미안하여 좌불안석이다.

  인턴 뿐 아니라 레지던트도 마찬가지인 듯. 긴장도가 높은 파트로 배정된 여선생님의 menstrual cycle이 불규칙해지는 사건은 꽤 흔하다. 심지어 abnormal vaginal bleeding이 있기도 하다. 힘쓰는 일을 하는 외과계 전공의는 lumbar disc herniation 악화로 인한 요통을 참으며 버티다가 결국 2주간 입원하기도 했다. Migraine으로 β-blocker와 NSAIDs를 수시로 복용하는 동료, 복용량이 늘어나는 것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의대를 다니기 전, 누군가로부터 “레지던트는 아파도 쓰러질 때까지 병원에서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 말이 참 멋있어 보였다. 투철한 직업정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래, 바로 그것이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 아니겠는가, 라며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로 내가 들어와 일해보니 내 자신의 ‘모든 것’이 소모될 때까지 일하는 것은 매우 sustainable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는 내가 아파서 일을 못한 만큼 다른 누군가가 잠을 못 자고 일하며 그걸 메워야 한다. 내가 몸이 좀 안 좋다는 소문이 돌면 나의 이미지도 유약한 사람으로 굳어질 것 같고 윗사람 눈에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냥 참고 지내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실로 내려가는 사건이 발생해야 그나마 면죄부가 부여되는 셈이다.

  ‘인턴 주제에’, 골골거리면 어떤 과에서 나를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싶은 고민도 있다. 레지던트도 마찬가지, 일이 좀 많아지기만 하면 앓아눕는다는 낙인은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Fordism의 핵심은 노동자들의 업무동작과 과정을 초 단위로 분할하여 평가함으로써 효율적인 노동과정을 재구성한 것에 있다. 주어진 시간에 높은 노동강도로 일할 수 있는 conveyer belt를 만들어 노동을 표준화하였고, 그것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여가시간을 늘리거나 임금 상승으로 대체하며 노조설립을 막았다. 나는 포디즘을 선호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인턴의 업무과정도 제대로 분석하고 효율화하여―쓸데없는 일에 동원되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잉여시간을 나를 위해 투자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질 높은 의사를 양성하는 지름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2005/11/15 17:24 2005/11/15 17:24

멀티태스킹

from Experience 2005/11/15 17:22

2004. 2. 27

...이 불가능한 사람, 나.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없다. never!
남들 다 하는 티비보면서 전화받기도 나한테는 무리.
티비를 보면 상대방이 하는 말이 하나도 안들어오고
통화에 신경쓰면 티비드라마 스토리는 저만치 앞서나간다.
엠에센도 동시에 두 개 이상은 뛸 수 없다. 헷갈려 -_-;;
아빠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다. 그게 뭐 그리 어렵냐고.
나도 이해할 수 없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평소 생활에서도 여러가지 일에 동시에 신경쓰지 못하는 편.
하루에 해야 할 일이 서너개 이상이면 정말 머리아프다
완벽주의자의 폐해일까...
바쁘게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하루에 신경쓸 일이 두 개 이하인 여유있는 날이 좋다
기숙사에서 뒹굴거리는 건 폐인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난 내 방내 침대에서 책보면서 십자수하면서 음악들으면서
여유를 즐기는 게 정말정말 좋다
수업이 끝날 때 쯤이면 기숙사 내 방이 그리워진다

난 아날로그 인간인가 보다
그렇지만 그래도, 좋다.

2005/11/15 17:22 2005/11/15 17:22

2005. 1. 12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첫걸음이래.
어디선가 이 말을 듣고 그처럼 동감할 수가 없었어.
노력하면 된다는 그런 순진무구한 말에 점점 지쳐갈 때였거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그게 어른이 되는 거래.
응. 맞아. 이젠 조금은 알 거 같아,
세상엔 아무리 땀흘리며 노력해도 내가 얻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처음엔 슬펐지. 억울했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조금만 더 멀리 바라보면...
결국 똑같잖아?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얻을 수 없는 게 있을 테니.
내가 힘들여서 이뤄낸 걸 다른이들이 쉽게쉽게 해내는 걸 보면서
그동안 그저 속으로 마음 아파하기만 했다면,
지금은 이런 생각도 들어.
나도 때론 남들보단 쉽게 얻는 게 있잖아?

그리고 말이지,
진실된 노력은,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의 마음만큼은 바꿀 수 있어.
응. 난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
뭐 해도해도 학점 안나오고, 일도 뜻대로 잘 안풀리고,
정말 노력과 결과가 털끝만큼도 상관 없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너무 무력하게 느껴져도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만큼은 간절히 바라면 이을 수 있다고 믿을래.

풋. 알을 깨고 나온다지만, 가끔은 그러고 싶지 않을 때도 있어.

2005/11/15 17:21 2005/11/15 17:21

제목없음

from Experience 2005/11/15 17:13
 

2004. 8. 20

제목 붙이기 싫어서. 번호 붙이려구.
제목이란 건 내 생각에 경계선을 그어버리거든.

잠이 오는데 그냥 자기가 싫다. 계속 싸이질중.

여행 다니면서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정확히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나 어렸을 때 참 순진했던 거 같다. 한편으론 바보같았지만.
국민학교 때 나랑 제일 친했던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그 친구가 해준 말 한마디에 엄청나게 큰 충격을 먹고
마음의 상처에서 무려 6년간이나 벗어나지 못했었다.
근데 그거, 지금 들으면 "흥 그래?"라고 지나쳐버릴 거 같다.
별 거 아니다, 요즘의 나에겐. 웃어 넘겨버릴걸?
사람의 선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상처도 받을대로 받아서...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난 그 극한을 이미 봐버린 거 같다. 그리고 나도 엄청나게 사악해졌다.
뭔가 보복심리 때문인지 아님 방어하려는 건지 난 오히려 상처를 입히는 쪽이 되어버렸어.

근데 말야.
정작 지금 나랑 가장 마음이 가까운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그 순진했던 시절에 처음 만났었다.
오래 만나서 정이 깊어졌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어설프게 자주 못만나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거 만큼
어색한 친구 사이도 또 없지...
그 때 만난 사람들은, 지금도 그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근데 요즘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가면
왠지 상처받을까봐 두려웠다. 웃기다고, 어리석다고.
혹시라도 다시 그런 걸 겪긴 싫었다. 그래서 안 하고 있었다.
뭐랄까.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음. 잘 표현이 안 되는군. 답답해.

하지만 나. 여행 다녀와서, 나도 모르게 다시 그렇게 하고 있다.
결과는? 대부분은 괜찮았고 안 괜찮은 경우도 물론 있었다.
그리고 또 상처를 입었지만 그때보단 더 수월하게 아물 거 같다.

그렇지만 아직도 난 "남"이야기를 듣는 게 참 싫다.
특히 그게 좋은 내용이 아닐 경우는 더더욱.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은 분명 다른 사람한테 가서 나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할 거라는 걸 잘 아니까.
그리고 그런 내용의 대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되니까. 말도 안되는 엄청난 오해...
나, 남들이 볼 땐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 관심 없는 사람 같을지도 모른다.
그치만 내가 사랑하는 아니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험담을 듣느니 차라리 그냥 귀를 막아버리겠어.

그냥 주절대고 있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뭔가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거든.
문제는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판단을 못하겠다는 것.
판단이고 뭐고, 아예 못 들은 걸로 쳤으면 좋겠는데,
쓸데없는 거에는 기억력이 좋아서...

이젠 정말 자야지.
일기장에 생각을 쏟아버리고, 마음을 비운 채로.

2005/11/15 17:13 2005/11/15 17:13

패치 아담스

from Experience 2005/11/15 17:08
2004. 11. 4.

요즘. 정확히 말하면 대학교 들어온 다음부터.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억지로라도 읽었던 신문 사설들하고도 이젠 안녕.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관심은 일체 상실.
정치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가장한 무관심.
언제부턴가 멀어진 문학작품들 그리고 가까이하는 실용서적들.
기껏 하는 '공부'라야 시험 때 무조건 '암기'하는 지식들 뿐.
열심히 발라서 시험지에 토해내고 나면 증발!
일반생물, 심리학, 비교해부학, 유기화학, 일반물리학,
이들 중 그 어떤 지식이 내 머리속에 남아있나. 없다 ㅠ_ㅠ

이젠, 머리속에 있는 생각들을 말로 표현하는 것 조차 힘겹다.
생각이 말로 잘 매끄럽게 표현되어 나오지 않는다.
'머리를 쓰는' 공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 오늘 의학영어 시간에 본 패치 아담스에서 절실히 공감하는 몇 가지 ◀

- 의대공부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 환자는 의사를 '신'으로 본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 대해 생각하듯이. 뭐,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능력에 비해 기대치가 현저히 높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의사는 '인간'이다. 그래서 짜증낼 수도 있고, 피곤해할 수도 있으며,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을 '의사'-즉 완벽한 인간-으로 만드는 게 의대다.... 근데 과연 현실에서도 완벽해??? 얼마전에 하버드대 협력병원에서 실험한 거 보니까 인턴들 잠 덜 재웠더니 의료과실이 현저히 늘어났다던데;;;
- 의사는 질병을 보기 이전에 사람을 마주보는 직업이므로 사람 대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 질병 이름이 아닌, 사람으로서 환자를 대하라는 것.
패치 아담스가 학장에게 왜 환자를 이름이 아닌 병명으로 부르냐는 질문에서, 정말 뜨끔했다;;
- 무엇보다, 마지막 엔딩 자막의 패치 아담스가 그 후 16년동안 의료사고에 한 번도 제소당하지 않았다는 걸 알려줄때 이 사람 정말 능력있는 인간이로구나 싶었다... 지금 세브란스에서 진행중인 의료소송이 20개가 넘는다는데! 소송 한 번 잘못 걸리면 장난 아니던데 말이지 -_-^ 놀랍다
- 성적 좋으면 만사가 OK.
ex 1 : 패치 아담스 시험성적 탑인거 확인한 즉시 작업 성공하다.
ex 2 : 퇴학 여부 결정하는 교수들, 계속 부정적으로 말하다가  그러나... 성적은 좋으므로;; 라는 말로 분위기 전환시키면서 '이런 성적을 가진 학생을 퇴학시킬 이유가 없다' 라는 판결 내림. 그치만, 그렇게 놀면서 공부를 잘한다는 건 지능지수 150 이상의 천재가 아니고서야-사실 넘어도 뭐 다를 바 없지 -평범한 사람들에겐 말도 안되는 꿈이야기이다;; 원리를 이해해가는 수학 물리도 아니고 그저 전화번호부 암기식, 양으로 승부하는 우리 시험에서는 암기력하고 시간이 승부수인데 말야 -0- core element야 ? gg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 단어란;;; b&b subunit쯤에 해당되는 건가;;; 뭐야뭐야 ㅠ_ㅠ

...내일 맘 편하게 놀고 싶어서 미리 세포 레포트 쓰는중인데 몸이 또 날 거부한다 뭔가 잘해보려고 했더니만;;
이제 discussion만 쓰면 끝나는데 손에 잡히질 않아 ㅠ_ㅠ handwriting 극도로 싫음. 왜 편한 컴퓨터를 두고 고집하는지,
깐깐한 조교님 성격 하고는 ㅡ_-+ 괜히 레포트 쓰기 싫으니까 오랜만에 싸이에서 끄적끄적
2005/11/15 17:08 2005/11/15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