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에서 - 칼봉산 펜션 :: 2006/08/1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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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엠티를 갔던 친구의 추천으로 내가 예약한 펜션.
지은지 얼마 안 돼서 통나무집도 깔끔했고 성수기인데도 그리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 펜션 바로 앞에 놀기 딱 좋은 계곡이 있어서 맘에 들었다
가평까지 왕복 기차미 7천원만 들이면 가평역으로 픽업까지 해 주시고...

다만 그 놀기 좋은 계곡에 날씨 때문에 발만 담그고 왔다는게 문제;;

2006/08/16 22:29 2006/08/1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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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에서 - 여행의 필수요소 삼겹살!! :: 2006/08/1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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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이랑 목살이랑 구워먹을 고구마랑 가지고 가서
쏟아지는 빗소리를 즐기면서 먹자파티를 열었다.
산사춘이랑 설중매도 가지고 갔는데 막상 넷이서 설중매 하나밖에 못 먹고...
우리의 주당(?) 시루도 알콜메이트가 없으니 실력발휘가 안되나보다;

고기 양도 딱 맞아서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았고,
녹빛 푸르름 속에서 시원한 빗줄기를 보면서 먹는 고기도 맛있었고,
(비록 사진상으로는 무지 날씨가 좋은거같이 보이긴 하지만...)
마지막에 남은 고구마들 호일에 싸서 숯불에 구워먹는 거도 좋았다 ... :-)

2006/08/16 22:27 2006/08/1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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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에서 - 경진이가 가져온 보드게임 :: 2006/08/1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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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이가 젠가와 카탄을 가져왔다.
여행길에 보드게임은 꽤 좋은 선택이다. 가져올때 좀 무겁다는 사실만 빼고;
안정적이고 이쁘게 위에 다시 올려주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꼭 젠가할 때 사선으로 불안정하게 놓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재밌잖아...-_-

카탄은, 재밌는 게임이긴 한데, 단점은 배우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방법 익히고 한 판 하고 나면 시간이 넘 오래 지나가있거나 혹은 사람들이 지쳐있다는 점.
이번에도 카탄 한 번 끝나고 나니 벌써 웃찾사 할 시간이 되어서 그거 보자고 그러고ㅋ

나도 Pig pile이나 uno 같이 배우기 쉽고 가지고 다니기 쉬운 카드게임 하나 살 까 궁리중 ^^

2006/08/16 22:26 2006/08/1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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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에서 - 새침한 표정의 시루 :: 2006/08/1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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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으로 처음 gif file 만들어봤는데 잘 될라나;
경진이와 함께 만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시루.
여행 내내 새로 산 스카이 폰으로 여러 사진들을 찍어주는 솜씨를 발휘ㅋ

2006/08/16 22:23 2006/08/1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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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세례성사 받던 날 :: 2006/07/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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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6. 10 토요일

(정말 얼마만에 하는 사진정리인지... 맨날 찍기만 하고 정리도 인화도 업로드도 안하는 이 귀차니스트!! ㅜㅠ)

내가 받고 두 달 정도 지나 아빠도 드디어 세례성사를 받으셨다-*
세례명은 베드로. 대부님이 정해주신 건지 아빠가 정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고,
엄마는 옆에서 "정말 가톨릭틱?한 이름이다"라고 계속 그러신다 후후

울 아빠, 가족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을 감추신 채 예비자교리반에서 반장까지 하셨단다...
세례식이 거의 다가올때쯤 우리집에 걸려온 다른 예비신자에게 듣고서야 알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그리 좋아하시지 않는 아빠로서는 정말 대단한 일이다 와우
(이게 다 하느님의 은총일 거다 ㅎㅎ)

나는 학교 바쁘다는 핑계로 3월에 개학한 다음부터는 교리반에 거의 나가지 못했는데
아빠는 반장에 개근이던가?까지 하셔서 세례식 다음날 주일미사에서 독서까지 하셨다
아. 자랑스러운 울 아빠. 멋져요 ^-^

아마 이 때도 계속되는 시험 때문에 좀 타고 있었을 건데
그래도 이렇게 기쁜 날은 일생에 한 번이고 시험이야 앞으로 수없이 많이 볼 텐데 이러면서
망설임 없이 순천으로 향했다. 아마 개학하고 집에 처음 내려갔다지.

첫번째는 신부님께서 이마에 성수 부어주시는 그 찰나(저거 찍느라고 정말;)
두번째는 세례식 끝나고 성모님 앞에서 엄마랑 아빠랑 같이 ^^

2006/07/25 22:21 2006/07/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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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과 함께 한 택트 나들이 :: 2006/05/28 16:57


내가 처음으로 택트를 탄 건
아마도 예과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극회 여름공연 캐스트 연습 중 어느 뒤풀이날
알콜을 잔뜩 머금어 기분이 날아갈 듯한 상태에서,
역시 알콜에 취해 계신 당시 극회장님의 택트를 타고
엄청 좋아라 하면서 택트를 타고 서문 하숙집까지 갔다지.

지금 생각하면 좀 위험하기도 한데;
여튼 엄청 기분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어서,
나중에 택트를 탈 때마다 그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

올해의 첫번째 택트 드라이브는,
기억나지 않는 지난 겨울의 어느날,
이대 앞에서 학교까지였던 것 같다.
그때도 정표가 태워다 줬었다.



아. 내가 헬멧을 쓰기만 하면
사람들은 카트라이더 캐릭터를 닮았다고 한다
이름이 뭐더라; 나도 카트 해봤지만 별로 안 닮았던데 뭐!!

저번주 방학에는, 정표랑 오리엔탈 타이에서 점심먹고 드라이브 갔다
정표가 쐈다 후후 정표야 잘먹었어~ -*

다음은 먹은 음식들 시리즈.
아무리 메뉴판을 들여다보면서 음식 이름을 외우려 해봐도
심지어 읽기조차 어려운 태국말들이라; 그냥 맛있게 먹는 걸로 만족할래.
샐러드도,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조용하면서 편안하고
게다가 주스나 탄산음료 같은 건 공짜로 무한리필이고 해서
오히려 펨레보다 나은 듯 해서 요즘 애용하기 시작한 곳이다.
결정적으로 우리집 앞에 있어 가까워서 좋다




해산물 샐러드. 새콤달콤하다. 보기에도 너무 예뻐서 먹기가 아까웠던.




메뉴 이름은... 매운 해산물 볶음 정도?!
적당히 매우면서, 새콤달콤해서, 내 입맛에 딱이었다.
태국 음식이 원래 한국 사람들 입맛에 잘 맞는건가 봐.
홍콩 음식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버렸다(딱 두번 가봤찌만 ^^;)




정표가 고른 게살볶음밥. 게살을 골라먹는게 좀 번거롭긴 했지만, 맛있었다.
게살 골라먹는 데 쓰는 포크 비슷한 신기한 도구;도 있었다.
탐나서 나도 이거 하나 사서 집에 두고 쓸까 하다가
일년에 게살 먹는 날이 며칠이나 되겠어 하면서 그냥 말았다;;




밥사준 중국인. 고마워 히히 ^^



밥 열심히 먹고, 졸린 눈을 부릅뜨며 드라이브 나섰다
괜시리 택트가 타고 싶어서 맨날 모경이만 졸랐었는데
막상 정표한테 택트를 얻어타게 됐다. 재밌었다. ^^

신촌을 거쳐서 서강대교를 달리고~ (서강대교 맞겠지? 가물가물;)
중국인 녀석이 결국 택트 속도를 90까지 냈으나
나도 저번 겨울에 연수 받으면서 속도공포증을 극복하야 전혀 무섭지 않았다 후후
이래뵈도 나도 국도에서 140까지 밟아밨다고;;

택트랑, 보드는, 같은 속도에서도 속도감이 훨씬 더 커서 좋다
그만큼 더 위험하다는 뜻도 되는건가; 그래도 좋다 ㅎㅎ

여의도 공원에 도착해서 잠시 내려서
15분짜리 속성 택트 교육을 받았다.
아. 생각보다는 쉬웠는데, 역시 실력은 금방 쌓이는 게 아니다
정표 택트가 무지 무거워서 회전할때마다 난 휘청휘청.
그래도 자동차 운전보다는 더 쉽고 재밌었다.




내 모습 나름 그럴싸하지 않은지? 나름대로 택트 잘 탔다.
물론 경력자 중국인을 이기기엔 좀 무리였지만 ㅎㅎ




좋아라 하고 타고 있다; 후후
나도 예전에 무악 살때 주저 말고 택트 하나 장만할 걸 그랬다
정말 편했을 텐데. 괜시리 남학우들 눈이 무서워서 눈치보다가.
아. 지나간 일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리 ^^;

난 게임하는 거 옆에서 지켜보는 게 더 재밌고
운전도 남이 하는거 얻어타는게 더 재밌다는 주의여서
택트 연수(?)를 엄청 빨리 끝낸 뒤 다시 태워 달라고 졸랐고
그래서 상암동으로 향했다.

상암동은 백만년만에 온 거 같은데...
막상 상암동 하늘공원도 제대로 온 건 처음이었다.
아. 인라인 타는 사람들도 많고, 아이들도 많고.
다음에 시험 끝나면 인라인이나 타러 와야겠다 싶었다.
아. 그런데 인라인이 없구나. 하나 살까.

4시에 토요미사 간다고 했더니
마지막으로 성당 앞까지 드라이브해 태워다준 정표. Thanx! ^-^

2006/05/28 16:57 2006/05/28 16:57
  • 정표~☆ | 2006/05/29 00: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누나 때 극회장이면 시홍이형?? 혼자타셔도 작을텐데 ㅎㅎ
    아~~ 벌써 1주일 전이군요........ 시간 참 빠르네요....... 저 음식들 정말 다시 먹어보고 싶고......... 진짜 맛있었는데..
    다음엔 어디로 모실까요??

  • ???? | 2006/05/30 21: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마 그때 시홍오빠 택트도 좀 컸던 거 같아ㅋ
    다음엔 내가 밥사줘줘야 하는거 아닐까나? ^^; 후후
    여튼 재밌었고 무지 고마워! ^^

  • 정표~☆ | 2006/05/31 02: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식당으로 모신다기 보다는 드라이브를 어디로 모실까........ 대략 그 정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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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 2006/04/2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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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2. 11 5:11 pm 순천만

2006/04/29 18:55 2006/04/2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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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은, 항상 남의 탓만 한다 :: 2006/04/27 18:22

1. 스트레스는 선택의 문제다.

지금  당신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삶은 늘 이런 '원치 않는 일'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 스트레스는 선택의 문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건 간에 그 대응 방식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표현하거나 두려움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감정을 자제하여 침착하게 대응할 수도 있다.



2.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거나 그에 맞게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얘기치 않은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응방법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한숨과 불평에 사로잡혀
'난 한 번도 이런 식으로 해 본 적이 없는데!'
혹은 "왜 이 모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와 같은 생각만 하고 있다면,
매우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금 당신도 변화에 직면한 상태인지 모른다.

최근 삶에서 엔진이 갑자기 정지해 버린 일이 없었는가?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발전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어떻게 하면 내가 변화하는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3. 완벽한 시스템과 무한한 자원을 소유한 조직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더 나은 도구, 더 나은 시스템,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예산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가지지 못한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태만의 또 다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주어진 도구만으로 일을 하다 보면 더 많은 도구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진리이다.

누구든 뿌린 만큼 거두기 마련이다.
현재 가기지 못한 것에 미련을 가지고 집착하는 것은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정말로 남다르고 탁월한 결과를 얻고 싶다면, 현실 속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데 집중해야 한다.



4.문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부족한 게 아니라 '기존'의 아이디어가

여전히 효과적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핫 토픽(hot topic)이 아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평소에 개인적인 책임의식과 같은 '기본'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적용할까?" 하고 묻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5. 우리가 물리쳐야 할 사람은 세 사람이다. 싸워야 할 상대방과 자신 그리고 심판이다.

당신의 삶에서 '심판'은 누구인가?
당신의 성공을 가로막고 있는데도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람
또는 그런 상황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어떤 목표를 갖든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당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장애물일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장애물 자체에 집착하지 말자.

심판이 아무리 불리한 판정을 내리더라도 의연하게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성숙함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공을 원한다면  당신의 통제범위 밖에 있는 무언가를 불평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심판을 이기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다.



6.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와 손과 가슴을 모두 동원하여 전념하면서도,
결코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주인의식이다.



7. 이런 기도문을 들어본적이 있는가?

"하느님! 부디 저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과,
바꿀수 있는 것을 과감히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이둘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8. 행동이란 그것이 비록 실수로 이어질지라도,

그 과정 속에 반드시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있다.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체와 위축만 있을 뿐이다.
행동은 우리에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잘 해야 지금의 상황을 유지할 뿐이며 과거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한다.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려움을 의미한다.


9. 리더쉽이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사고방식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고 우리의 역할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개인적 책임의식을 실천하고 긍정적인 기여방안을 선택하는 데서 비롯된다.



10. 배움이란 세미나에 참석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다.
뿐만 아니라 이런식으로 얻은 것을 두고 지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진정한 배움이란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변화이다.

변화가 없다면 배웠다고 할 수도 없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배웠는가?  
 
 

2006/04/27 18:22 2006/04/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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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에서의 세례식 :: 2006/04/27 00:33

2006. 4. 9.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세례성사를 받았다. 부활 대축일 한 주 전.
덕분에 그 다음주에 새병원 예배실에서 있었던 부활특전미사때 영성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

이날은 본1의 3일+1시간 완성 인체발생학 중간평가 전날이었고,
본2의 분기말이 코앞에 다가와 있던 날이었다

나는 전날 예행식때도 이날에도 카네기 스테이지를 들고 가서
틈만 나면 정신없이 발라대고 머리에 우격다짐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처음에는 많이 아쉬웠다.
일생에 한번 있는 세례식인데 좀 더 성스럽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을 수 없을까 하고.
한 달 뒤에 다른 반이랑 같이 받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더 이상 기다리기엔 내 인내심이 조금 부족했다



앗 이건 언제 찍은거? 원래 미사중에 사진 찍지 말라 그랬는데...
라고 해서 못찍을줄 알고 서운했는데 이렇게 찍어주다니 고마워 ㅎㅎ




같이 세례받은 10월 목요반 토요반 사람들.
맨 아랫줄 가운데 신부님 오른쪽에 앉으신 분이 우리반 담당이셨던 효주아녜스 수녀님이시다
이번이 첫 교리반 수업이라면서 맨날 부끄러움 타시고 ^^
한번은 교리반 담당하시는 신부님이 수업참관 하려고 오셨는데
수녀님이 "저 신부님 계시면 부끄러워서 수업 못해요" 막 이러셔서
결국 신부님은 수업을 못보시고 그냥 가셔야만 했다ㅋ
항상 소녀같은 모습을 보여주셔서 좋았던 수녀님.
내가 성서필사 일등했을때 선물로 팔찌묵주를 직접 만들어 주셨는데
나중에 우연히 내 팔찌묵주가 조금 커서 헐거운 걸 발견하시고는
다시 또 만들어서 주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세례식때 선물받은 묵주팔찌 하고 있지만  예전이 수녀님이 주셨던 것도 소중히 간직중...



우리 대모님, 소영 다니엘라!
처음에는 정원이에게 대모를 부탁했었는데,
명동성당에서 대모는 나이가 대녀보다 더 어리면 안된다고 해서
급하게 소영이에게 부탁했는데 선뜻 들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
(그리고 정원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ㅜㅠ 견진성사 때는 어떻게든...)
길었던 6개월 예비신자 교리과정 지치지 않게 잘 이끌어줬고
이날 나보다 더 기뻐해줬던 대모님. 고마워요 ♥



엄마도 세례식에 와주셨다
나랑 엄마랑 세례식날 정말 펑펑 울었다
난 이런저런 생각에 북받혀서 그랬는데 울 엄마는 왜그러셨을까나.
사실 엄마는 예전에 종교에 대해 약간 부정적이셔서 좀 걱정했는데
요즘은 나랑 아빠랑 성당 다니는거 많이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
음. 기회를 봐서 엄마도 성당으로 이끌어야지...;;;




세례식날 명동까지 와준 고마운 친구들! 분기말이라 오기도 힘들었을 텐데...
미나상, 정원, 승민이, 우순이, 겜메 그리고 울 대모님 모두 고마워요 ^-^
사실 아무도 안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었다는 ㅋㄷ
아. 디카 빌려준 겜메 특별히 더 감사 ^^;
내 동생이 내 디카 빌려가서는 자기 친구 빌려줬다 그래서 정말 황당했다; 나한테 말도 안하고;;
이날 기대치 않았던 꽃도 선물도 너무 많이 받아서 너무 행복했다
하나는 내 가방에, 하나는 손목에, 그리고 나머지는 내 책상에 놓여 있다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선물까지... 감동이야 ☆
선물들 사진 찍었는데 아직 카메라에서 안옮겨서...
기회봐서 언젠간 올릴테다 ^^;


세례식이 끝나고 커피숍에 가서 같이 점심먹고.
나랑 소영이랑 점심을 못먹어서 많이 배고팠는데
토스트는 정말 어찌나 늦게 나오던지...
다들 "밀을 키워서 밀가루를 직접 만드는건가봐" 막 이러면서 웃었다ㅋ
사실 더 근사한 걸 사고 싶었는데 나랑 소영이빼고 다들 점심 먹고 왔다고 그랬다;;
하긴, 그때 시간이 몇시였니 -_-
포도모임때라도 맛있는거 사갈게~ 히히


지금부터는 내가 안선영 마리 세라피나가 되기까지의 behind story.

내가 처음 주일미사를 간 건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하긴, 우리때까지는 국민학교였다. 내 졸업앨범은 국민학교라 찍혀 있다)
외가쪽이 모두 카톨릭신자라서 어릴 적 외할머니 손을 잡고 주일미사에 따라가곤 했다
외할머니는 항상 오백원짜리 동전을 쥐어 주셨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앞에 나가서 바구니에 그걸 넣고 왔던 기억이 난다

특이하게도 외갓집에서 우리 엄마만 비신자이셨고 (지금도 그러시고;;)
아빠도 종교가 없으셔서. 내가 어릴적에 엄마아빠는 내가 신앙을 갖는 걸 반대하셨다
어릴 때 주위사람들에게 휘둘려(?) 종교를 갖기 보다는
내가 좀 더 큰 다음에 내 스스로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거다
그 땐 반대하는 부모님이 미웠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말 맞는 말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정신없이 바뻐서 주일미사 같은 건 까맣게 잊어먹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다시 미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가톨릭 동아리에 들어갔었다. 사실 동기는 좀 불순했다.
성당이 시내에 있어서 주일에 학교에서 성당까지 태워다주는 봉고를 타면
편하게 시내에 나갈 수 있었고 -__-;;;;;
그리고 주일에 미사나 예배에 가는 사람들은 아침 자습을 빼먹을 수 있었던 거다 하하;

아냐. 난 그래도 나름 열심이었다
비록 중간에 그만두긴 했지만 통신교리도 듣고
성탄절이면 애들이랑 같이 성극도 하고 그랬었다
(그러고보니 난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했었구나 ㅎㅎ)
하지만 통신교리는 한 두번인가 남겨두고 그만뒀다
머리에 지식은 늘어가지만 내 스스로 신앙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기에...

그리고 재수하면서 청담동 성당에 몇 번 갔었는데
대학 들어와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고딩때는 대학 가서 시간 나면 꼭 세례 받아야지! 이래놓고선
막상 힘들게 대학 들어오니 그저 놀고만 싶었나보다
무엇보다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믿고 있는 걸까? 하는, 수없이 떠오르는 의문.

먼 길을 걸어왔지만, 그게 결국 주님의 뜻이었다.

첫 영성체때의 기도는 꼭 들어주신다지...
정말 소박하지만, 정말 간절한 기도를 드렸었다
막상 안이뤄진거 같다고 몇 번 실망도 했었지만
항상 주님의 뜻은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닫는 거 같다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쪽으로 들어주신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주님. 감사해요. 열심히 신앙생활 할게요 지켜봐주세요 ^^
(비록 분기말 시험본다고 벌써 미사를 빼먹기는 했지만요;)

마지막 덧붙임, 내 세례명 seraphina에 대한 의미.
원래 seraphim은 대천사 이름이기도 하지만, 난 이탈리아의 성녀 세라피나를 택했다.
이유는..... 비밀.
해석할까 하다가 괜히 어설프게 번역하면 의미 전달에 제대로 안될까봐 그냥 둔다.

ST. FINA (SERAPHINA) March 12
Born at San Geminiano, Tuscany, Italy
Patronage of disabled people, handicapped people, physically challenged people, spinners

Fina was born in a little Italian town called San Geminiano. Her parents had once been well off, but misfortune had left them poor. Seraphina, or Fina, as her family called her, was their daughter. Fina was pretty and lively. She had a generous nature. Each day she saved half of her dinner for someone in the town poorer than she. During the day she sewed and spun cloth to help pay the family debts. At night, she usually spent a long time praying to Jesus and Mary.
When she was still quite young, her father died. Fina was struck with an illness that deformed and paralyzed her. Movement became almost impossible and Fina lay for six years on wooden planks. Pain rushed through her whole body. The only way she could bear it was to concentrate on Jesus as he was nailed to the cross. "I unite my sufferings to yours, Jesus," she would whisper. Sometimes, when the pain was horrible, she would say, "It is not my wounds but yours, O Christ, that hurt me." Fina was left alone for many hours every day because her mother had to go out to work or beg. The neighbors knew about Fina, but her sores had become so foul-smelling that people made excuses for not going to visit her.

Unexpectedly, Fina's mother passed away. Now the girl was left alone. Only one neighbor, her good friend Beldia, came to care for her. Beldia tried to give Fina as much attention as she could, but Fina was usually left alone. It was obvious that she could not live much longer. She refused to lose heart. Someone mentioned to her about the tremendous sufferings St. Gregory the Great had endured. Fina became devoted to him. It is said that one day, as she groaned in pain, St. Gregory appeared to her. He said kindly, "Child, on my feast day God will grant you rest." His feast day in older calendars had been celebrated on March 12, because he had died on March 12, 604. So on March 12, 1253, St. Gregory came to take Fina home to heaven.

St. Fina helps us appreciate the Christian meaning and value of suffering. We can also realize the value of visiting shut-ins, the elderly, the ill. We can ask St. Fina to give us a sensitive heart for people who are lonely or suffering.

2006/04/27 00:33 2006/04/2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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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언니 출국하기 전에. :: 2006/04/2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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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 출국이어서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나서 같이 놀았다
시은언니는 지금쯤 샌디에고에서 엄청 재밌게 살고 있겠고나~ 부러비 ㅜㅠ
(언니 싸이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니 정말 너무너무 부럽기만 하다 흑)
여름방학 하자마자 놀러가서 개학 전날 와야지 이런 마음도 있었으나
날로 올라가는 유류할증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 생각은 접었다...

이날 내가 시험때문에 타고 있어서 언니가 신촌까지 와줬다
의료와 사회 수업 끝나고 만나려고 4시에 보자고 했었는데
그날 안명옥 선생님 좌담회였던가? 여튼 무지 늦게 끝나서 언니가 많이 기다렸다
신촌까지 오라고 해놓고서 어찌나 미안하던지;;;
처음에는 둘 다 피곤해서 병원 커피숍에서 수다떨다가
결국 봄을 좀 즐겨보려고 백양로로 나섰다

여기저기 맺힌 꽃망울들은 예뻤지만
언니랑 나는 둘 다 초췌함의 극치를 달린다 아아 -_-

2006/04/26 22:13 2006/04/2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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