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 노년기행 :: 2008/09/13 18:50

라식해서 잘보인다고 편하다고 줗아죽겠다고 한게 한 달도 안 되었건만
갑자기 시력이 급하강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식이란 말인지...
강의록이나 책 같은 작은 글씨를 보면 흐려져서 하나도 안 보이거나
혹은 겹쳐져서 보이거나 해서 전혀 알아볼수가 없었다
나중엔 멀리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얼굴까지 알아보기 힘들다

결국 지난  일주일간 대략 60대의 시력을 갖고 살았다
웃기게도 먼 곳은 대충 잘 보이지만(그나마도 0.8 정도?)
가까운 곳은 전혀 보이지 않는! 즉 노년기에 나타는 '원시' 상태 ㄲㄲㄲ  -_+
순간 라식수술이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과 동시에 나 벌써 노인의 눈을 갖고 살아야 해?

물론 제일 불편한 건 수업시간이었다

...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황당하게도 핸드폰(!) 이게 문제였다
전화나 문자가 오면  누구한테 왔는지 문자 내용이 뭔지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액정에 보이는 문자 자체를 읽을수가 없어서. 게다가 블랙잭은 글씨도 워낙에 작잖아;;
다행히 문자 보내는 건 대충이라도 가능했다. 키 배열을 외우고 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 불편했던 건 모마켓, 모션 등등에서의 쇼핑라이프가 완전히 정지되었다는 사실;;;
미드라이프 다음으로 스트레스 해소에 일조해주는 이 취미생활이 사라졌다니, 이건 뭐.

그냥 되는대로 살다보면 좋아질 거라고 저번 일기에 썼었는데.
게으름을 이겨내고 다시 해결방법을 찾을 행동을 취하게 만든 건 목요일 아침 수업시간이었다

여느날처럼 프로젝터로 슬라이드에 비춰지는 파워포인트도 안 보이고
당연히 책상에 놓인 강의록도 안 읽어지고 그냥 생각없이 앉아서
그래 족보 나오면  그거나 보지 이러고 있는데...
그날따라 교수님이 앞에서 계속계속 왕을 찍어주시는 거다!!!
애들은 열심히 빨간펜 들고 왕 표시하고 있는데 나는 뭐 어딘지도 모르겠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짜증나서 그 담시간 수업 째고 외래 당일진료로 예약 바꿔서 병원으로 날아버렸다-*
바꾸는 과정에서 외래 간호사가 자기가 잘못해서 날 삽질하게 만든 주제에 나한테 짜증내서
난 원무과 직원한테 짜증내고 그리고 외래 진료실에도 짜증난 상태로 들어가고
뭐... 여튼 난 아직 인간이 덜 된거 같다는 이야기 -_-ㆀ

끝나고 현정씨와 영진씨와 홍대로!!
이건 새 글에 산뜻하게 쓰고 싶은 이야기 :)

어딜 가나 결론은 비슷한 거 같다
고로 약도 비슷하다
축동시켜라! miosis!!
(하지만 왜 난 내가 산동상태인지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
맨날 '이렇게 큰 동공은 처음 봤어요' 이딴 말만 듣고 다닌다)
이제 나에겐 경구제제와 안약이 있는데 뭐가 더 나을지 모르겠음이다
그나저나 각막에 상처가 있을 경우 사용하지 마시오 라고 적혀있던데
라식은 각막의 상처에 포함될까 아닐까?!

어쨌든 이젠 대충 책도 보이고 모니터도 보이고 핸드폰도 쓰고 살 만 하다 오래 보진 못하지만 그래도 히히
약 일주일간 노년기행을 미리 해봤더니 "읽고 싶은 건 미리미리 실컷 읽어두자"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족보만 보지 말고 다른 책들도 열심히 읽어두자

하지만 난 아직도 글씨가 겹쳐져 보여서 ㄱ과 ㅋ, ㅁ과 ㅂ, 6과 8 등등이 헷갈린다...

아 참, 그래서 이건 라식의 부작용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력 자체는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사실 내 시력은 안경 쓸 때의 원래 교정시력보다 라식을 한 뒤가 훨씬 더 좋아졌다)

그렇지만 라식을 하고 가을이라 알러지성 결막염까지 생긴 뒤로 심한 안구건조증이 생겨서
내 눈은 0.3% 하이알루론산 그러니까 3배농도 인공눈물을 먹어주는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더불어 항히스타민과 스테로이드 안약까지...  왜이렇게 속썩이니 너는 -_ㅜ 빨리 가을 지나가라!!

2008/09/13 18:50 2008/09/13 18:50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