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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은(여기서 말하는 '남'이란 서울 혹은 경기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을 말한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나 63빌딩이나 서울대공원이나 한강유람선 등등을 지겹도록 가봤다고 말하지만, (혹자는 유치원때부터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소풍이나 현장학습 때마다 간다고 했었다) 시골(?)에서 개구리알 건져서 올챙이가 개구리 될 때까지 관찰하며 놀고 방학때마다 잠자리 여치 방아깨비 잡아 곤충표본 만드는 숙제하고 집에서 도로 하나 건너 바로 있는 논밭에 철마다 모내기 벼베기 하는 걸 보며 자란 나한테는 이번이 처음으로 가는 서울대공원이다. 아. 서론이 너무 길다. 문장 하나를 이렇게 길게 쓸 수도 있구나.

  서울랜드는 애초에 갈 생각이 없었고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가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 아빠 엄마가 풍선을 한 손에 든 꼬맹이를 데리고 귀엽게 생긴 호랑이 우리 앞에 서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게 가끔 나온다. 그래서인지 동물원에는 그런 가족들이 와야 할 것만 같은 고정관념이 있다. 이 나이 되도록 동물원 한 번 안 가봤다는 거(어쩌면 어릴 때 갔는데 기억 못하는 걸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내가 알기로 전라남도에, 광주에도, 동물원은 없다) 언젠가 에버랜드 사파리를 간 거 같기도 한데...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 여전히 우리 성격대로 느긋하게 집을 나서서 여유롭게 서울대공원에 도착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늦게 도착한 탓에 동물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다들 낮잠자는 시간인지 아니면 벌써 퇴근시간인지... 우리는 있는데 동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기 전에 서울대공원 홈피를 좀 뒤져봤는데 뭐 할인쿠폰 같은 거도 없고 무슨 소린지도 잘 모르겠고 해서 일단 입구에서 패키지부터 끊었다. 코끼리열차+리프트+동물원 티켓. 코끼리열차를 내가 타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대공원 입구에서 동물원 입구까지 가는 동안 경치도 구경하고 사람들도 구경하느라 재밌었다. 그리고 학교 입구에서 새병원 현관까지 다니는 전동차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나저나 이 거리를 걸어오려면 한참 걸릴 거 같다. 예전처럼 걷는 거 좋아하고 부지런했으면 걸어왔으련만.

  입구에 도착해서 리프트로 갈아타면 동물원 맨 꼭대기까지 데려다준다. 거기서부터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동물원을 둘러보게 되어 있다. 스키 리프트랑 똑같다. 밑에 그물망도 있고 타는 데랑 내리는 데서 알바생들이 도와주고. 다른 건 스키나 보드를 안 신었다는 거, 그리고 눈 대신 푸르른 나무들과 풀꽃들이 우거져 있다는 거. 5월이라 그런지 신록이 아름다웠다. 굳이 산림욕장까지 가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대공원 리프트라기에 별거 아니겠지 무시했는데 이게 꽤나 길었다. 오히려 왠만한 스키장 리프트보다 더 오래 탄 거 같다. 무주리조트 실크로드 리프트 정도일까.

  캥거루 먹이주기, 물개 먹이주기, 아기동물과 사진찍기 등등의 이런저런 재밌는 행사가 많은데 우린 늦게 도착해서 볼 수 있는게 돌고래+물개쇼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그거 보려고 리프트에서 내리자마자 마구마구 뛰어갔다. 시작하기 직전에 들어갔는데 마침 좋은 위치에 자리가 남아있어서 냉큼 차지했다. TV에서 자주 본 거라 별로 기대는 안 했고 동물원에 오면 으레 봐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대 이상! 원채 동물을 안 좋아해서 물개도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보는 내내 강아지보다 더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다 짜고치는; 프로그램이겠지만. 돌고래쇼 보는 동안은 엉뚱하게 수영 생각이 났다. 저렇게 완벽하게(?) 다이빙해서 접영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사실 프로그램 자체는 특별한 건 별로 없었지만, 모니터에서 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건 많이 달랐다. 다운 받아 보는 영화와 극장에서 스크린 통해 보는 영화가 다르듯이.

  천천히 다른 동물우리들을 돌아봤다. 대체로 두 가지였다. 그 동안 가져온 환상을 깨거나 혹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거나. 인공포육장에 가서 귀여운 아기동물들을 볼거라 기대했지만, 이미 어느정도 커버린 호랑이 두 마리가 우릴 반겼다. 그 앞에 설명에 붙어있는 예전의 귀여운 사진이 무색할 정도였다... 퓨마는 옷이나 신발에 그려진 그림과는 좀 다르게 생겼고, 독수리는 녹슨 철망 안에서 부시시한 깃털을 보이며 시들시들한 채 나뭇가지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사슴은 여전히 귀여웠지만, 나라에서 본 것처럼 이미 먹을 걸 기대하며 사람을 반겼고, 예쁜 외모와는 달리 그리운 고향의 냄새가; 확 풍겨왔다. 티비에서 동물농장 볼 때에는 냄새에 대해서는 전혀 말해주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 생겼다는, 몸값이 무지하게 비싸다는 개미핥기도 보고 싶었는데(요즘 대세인 개미퍼먹어와도 꽤 연관성이 깊다) 분명 우리 앞에 개미핥기라고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귀하신 몸이라 퇴근 후에는 따로 보살펴 주는걸까?! 무척이나 아쉬웠다.

  리프트에서 오는 길에 산새장 그물을 봤었다. 새들이 하늘로 날아다니는 걸 보고 신기하다 생각했기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장 밖에서 구경할 줄 알았는데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열려고 했는데 안에서 잠겨 있었다. 5시가 넘어서 관람시간이 끝나버린거다. 안쪽에서 잠겨 있었는데 손을 넣어서 열려고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우리가 아니지... 동굴 보겠다고 관람시간 끝나서 관리인이 잠궈좋은 문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조명 다 꺼진 어두운 동굴도 (공짜로) 구경하고 왔는데;; 좀 기다리니 안에서 보던 다른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문을 열었고, 그 틈을 타서 잽싸게 들어갔다. 내 바로 옆에서 공작새가 꼬리깃털을 쫙 펴고, 정말 옛날옛적 민화에 나올 법한 장닭이 공격적으로 날 노려보고 -_- 참새들 한 무리가 여기저기 날아다니고(좋겠다 여기서 먹을 거 실컷 먹고 편하게 살겠구나...) 새들이야 그림으로 사진으로 티비로 자주 보던 것들이지만, 그게 새장 안에 갇혀서 나랑 분리된 게 아니라 내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 걷고 날아다닌다는 느낌이 신기했다. 이런저런 예쁜 새들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올리기가 귀찮다;

  같은 술수로 산새장도 들어가려 했지만 거기는 이미 입구와 출구가 자물쇠로 닫혀 있었다. 아쉬비. 밖에서만 구경했다. 재두루미 학두루미 두루미들은 오백원짜리 동전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었고(괜시리 민지시리즈 괴담이 생각났다) 오히려 백조를 실제로 보니 더 신기했다. 목이 정말 길더라. 그리고 동화책에 나오는 이미지처럼 우아했다. 며칠 뒤 혜갱네 집에 갔을 때 오리고기를 구워먹고 난 뒤 오리탕이 나왔는데, 혜갱이 나한테 목 부분을 줬다. 먹으면서 무심결에 말했다. 오리라 그런지 치킨에 있는 닭 목부분 보다는 길구나. 그리고 나서 생각했다. 아. 이게 백조라면 무지무지하게 길텐데... 백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건지 내가 특이한 건지 정말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열대조류관을 갔었다. 처음에는 색색깔 알록달록한 앵무새들이 너무 귀여웠고 한마리 키울까 싶었다. 말도 가르치면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고 재밌겠지. 하지만 그 아리따운 이미지도 잠시, 자기들끼리 죽자사자 싸워대는 걸 보고 환상이 확 깨졌다. 새장에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새장 사이로 부리를 내밀면서 쪼으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대공원 가이드맵을 가까이 댔는데, 종이 밑부분을 찢어서 가져가버렸다. 부리에 물면서 계속 삼키려고 하길래 그거 말리느라고 진땀 뺐다. 혹시라도 먹고 질식하면 어떡하나. 걔가 염소도 아니고... 부리에 물린 종이 빼내는 동안 쪼일까봐 무서웠다;;;; 설명에 의하면 어떤 앵무새는 철사도 자를 수 있단다(그러니 조심하라고 적혀 있다) 지금 옆에 가이드맵 보면서 글 쓰고 있는데 밑에 찢긴 흔적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더 보고 싶었는데, 8시에 대학로에 연극을 예매해 뒀고, 우리는 아직 저녁도 안 먹은 상태였다. 열대조류관부터 동물원 입구까지 서둘러서 내려왔다. 아. 중간에 한 군데 들렀구나. 낙타 우리에서 먹이를 줬다. 사실 먹이 주면 안되는데,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나무잎사귀들을 주니까 잘 먹길래 나랑 혜경이도 해봤다. 앵무새들보다 훨씬 덜 무서웠고 더 사랑스러웠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날 본 동물들 중 제일 예뻤던 거 같다.(돌고래와 물개를 제외하고.)

  단순히 동물들 우리를 돌아보는 것보다는 곰 먹이주기 설명회, 아기동물과 사진찍기, 사자 먹이주기, 홍학쇼 같은 프로그램들이 훨씬 더 재미있을 거 같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런 걸 해보려면 "일찍 와야 한다"는 거. 게으름 피우면 동물들 다 퇴근한 뒤의 빈 우리만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여기저기 걸으면서 구경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다음엔 더 일찍 가봐야지. (근데 누구랑 가나 -_+)

다른 일에 치여 계속 미루다 결국 후기를 쓰고 나니 속 시원하다. 잘 시간은 훌쩍 넘겨버렸고, 배가 약간 고프다.
오래 차를 타야 하는 전날은 습관처럼 늦게 잔다. 어차피 내일 차에서 잘 거니까 하는 생각.
오늘은 이상하게 잠도 오지 않는다. 평소같으면 열두시면 침대로 빠져들었을텐데.
그리 나쁘지는 않은 하루였어.
2007/05/30 02:18 2007/05/30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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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정원 2007/06/03 14:55  

    나랑 가자 ㅋ
    난 동물원이 정말 좋아^^  X

  2. 선영 2007/06/03 17:47  

    앗 그렇구나. 좋아 우리 담번에 시간내서 가자. 주말에 오르세도 기대된다 히히  X

  3. Chihoon 2007/06/06 19:08  

    동물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호랑이, 코끼리, 원숭이들의 각종 dung 향을 콧속 깊숙이 느끼면서....
    '아 내가 동물원에 왔구나' 하고 자각하게 되지.... ㅋㅋ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