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클리닉 창립 10주년 기념행사 :: 2007/05/13 21:32

  라파엘의 기도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사시며
  가장 큰 사랑을 가르쳐주신 주님
  감사하나이다
  저희가 이기심과 일상 속에 파묻혀
  사랑을 잃어갈 때
  저희로 하여금 당신의 부르심을 듣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에 답하게 하소서


  고통 받는 이의 모습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시며
  그들이 내민 속을 보듬으며
  당신의 미소를 보게 하소서
  베품보다는 늘 섬기는 법을 배우게 하시어
  자신을 낮추고 진정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오늘의 이 시간이
  저희 자신을 위한 가식이 되지 않게 하시며
  저희의 몸짓이 비록 보잘 것 없을지라도
  진정 주님을 위해 봉헌되어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http://raphael.or.kr  라파엘클리닉 공식 홈페이지)



얼떨결에 자원봉사모집한다는 소현언니 문자에 간다고 답문을 보냈다
아마 호기심 절반, 의무감 절반 정도가 뒤섞였던 거 같다
10주년이 되는 동안 라파엘 클리닉에 한 번도 일하러 간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고,
포도나무에서 간다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남아도는-_- 내가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어쨌든 일하는 건 그저 그래도 포도알들을 만나는 건 기분 좋으니까 ^^

포도나무에서는 라파엘에 가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왜 가지 않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난, 라파엘 클리닉이 뭔가 서울대 중심으로 돌아가서 연세대는 약간 outsider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니 그런 결과가 올 수도 있겠지만.)
가톨릭대가 참여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닌지 내 맘대로 추측해 본다
그리고, 예과 때부터 재활병원 봉사만 계속 해서 그런지
'봉사' 하면 재활병원이랑 꽃동네가 연상되고 거기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막상 본과 와서는 방학 때 꽃동네 간 거 빼고 전혀 하지도 못했지만.

막상 문제는 행사가 너무 일찍 시작한다는 거;;
저번주에 순천에 내려가서 막무가내로 일주일 놀다 온 대가로
서울 오자마자 쌓인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었고
며칠 동안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 하루종일 이것저것 하다 보니 너무 피곤했다
너무 피곤해서 밥 먹는 것도 귀찮고 그냥 자고 싶을 정도로...

아침에 알람과 전쟁하다 다섯시 반에 간신히 일어나서 씻으려고 거울을 보는데
토끼 저리가라 할 정도로 빨갛게 충혈된 눈에 무릎까지 내려온 듯한 다크서클. 이건 본1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하긴 잠자는 시간만 빼고 하루 18시간씩 렌즈를 끼니 눈이 충혈될수밖에;
그래도 안경보다 편하니까, 그 빨간 눈에 또 렌즈를 집어넣는다  
6시 15분에 출발해서 혜화동 동성고에 7시에 도착했다

이런 일들이 다 그렇듯, 인력은 정말 비효율적-_-^으로 돌아간다
한 쪽에서는 일손이 부족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다른 쪽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뭘 해야할 지 모르고.
대부분의 일은 단순노동이다. 청소하고, 짐 옮기고, 정리하고, 사람들 안내하고.
그렇다고 그런 일들이 값어치가 없진 않으니까. 화려함의 뒷면엔 이런 게 결국 존재하는거다
운좋게 강당 출입문 안내요원으로 배치됐다.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사람들이 다들 반대쪽 문을 사용해서;
하지만, 정말 당황스러웠던 건, 행사에 참석하러 오신 이주노동자 분들 다수가 한국어를 안쓰신다는 거;;;
영어로 안내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겁했는데, 사실 몇 마디 할 게 없어서 금방 익숙해졌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오신 어떤 분과 이야기하면서 필리핀 어학연수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처음에 듣고서 중국말인 줄 알았다 -_+ 아. 필리핀식 영어가 저런 거구나.

강당 밖에서 계속 자리를 지켜야 해서 공연을 못 본게 좀 아쉽지만
대신 김수환 추기경님이랑 교황 대사를 바로 눈앞에서 뵙게 되었다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이미지였다. 어렵지 않고, 편안한 느낌.
공연이 끝나고는 그냥 강당에 들어가서 미사에 참여했다.
사실 무책임한 행동이지만; 추기경님이 집전하시는 미사는 예전에 성탄전야미사 이후 처음이라...

봉사를 할 때마다 항상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목적'이다. 남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일하지만 막상 되돌아보면 '내 자신의 만족'을 원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자만심, 가식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인터뷰에 보면 봉사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라고 답하는 사람들.
막상 생각해봐야 할 건 내가 아닌, 상대방이다. 받는 사람이 정말 필요로 하는 걸 줘야 한다.
이 생각이 어긋나면 봉사하는 일에 회의가 들지도 모르겠다
내 도움을 받은 상대방이 반응이 없거나 감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내 노력에 대한 보답이 없다는 생각에, 내 도움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느낌에 서운해할지도.
하지만 그건 결국 봉사를 통해 날 만족시키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잖아.

그리고 하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이다
특히나 봉사단체나 NGO들에 처음 일하러 갈 때는 '이상'에 끌려 오는 경우가 있지만
막상 돌아가는 '현실'은 그것과는 많이 다른 거 같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봉사 단체 안에서도 이런저런 갈등이 있고 세력다툼(?)도 있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강당 좌석은 VIP와 일반으로 따로 나눠지고, 출입문도 마찬가지고
여러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인종간 갈등을 초월해 의료혜택을 받지만
행사가 끝나고 선물을 나눠주는 동안 특정 국가 사람들이 두세개씩 받아갔다며 항의를 하고...

마지막 하나는 봉사단체들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한다는 거.
라파엘도 대진료 때에는 봉사자들이 엄청 많고 (그래서 잘못 가면 오히려 치인다는 말도 돌고;;)
꽃동네도, 소록도도 봉사 가려면 몇 달 전부터 미리 신청해야 하는데
막상 그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기관들은 잘 알려지지도 않고 봉사자들도 적어서 인력이 더 필요할거다
아예 사회복지단체의 도움을 못 받고 있는 개인들도 많을 거고.

행사 내내, 부러웠다. 학교와 병원과 가톨릭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 사실이.
우린 정말 사람들 말대로 '박해받고 산다'
병원내 사목 활동도 눈치보며 하고(라고 수녀님이 말씀하셨고)
병원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 매주 할 수도 없고 종강 개강 부활 성탄 미사 정도이다
모르긴 해도 서울 시내 대학병원들 중 주일미사 없는 곳은 아마 신촌과 영동 세브란스밖에 없을거다
CMF 밀어주는 거 반만 포도나무에 허락해줘도 정말 활동하기 편할 텐데.
난 개신교 자체를 싫어하진 않지만, 개신교가 가진 그 '배타성'이 싫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은, 역시 사람은 지치고 피곤하면 까칠해진다는 사실 -_+
나도 그렇고 주변사람들도 그렇고. 예민한 상태였다.  
뒷풀이 가고 싶긴 했는데 너무 피곤하고 먹고 싶지도 않고 술도 못마실테고
그냥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시체처럼 누웠는데 막상 잠도 안 들고 비몽사몽 하다가 저녁에 일어났다

아직도 Things to Do List는 절반이 지워지고 절반 정도 남아있다
내가 번 일이니, 결국 내가 할 일이지 뭐.

2007/05/13 21:32 2007/05/1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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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갱 | 2007/05/15 01: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두 요새 좀 팍팍하다.
    확실히 짜증이 늘었고 여유는 줄었지.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것을 처리하도록 입력 되어진 기계쯤?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프린트은 필수고! 브리핑은 옵션!! 인.

    삽질 = 시행착오.
    에 관한 생각들이 떠올랐으나 시간관계상
    침대로 가도록 하겠다.

    참. 개미퍼먹어~ 본적 있냐?




  • 혜갱 | 2007/05/15 01: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모티콘을 넣어서 인사 해야지.
    잘자 ~~ -_- 바이바이 ^*=*^
    ㅋㅋ
    ㅎㅎ
    ㅋㄷ

  • 선영 | 2007/05/15 14:55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ㅋㅋ 너도 요즘 상태가 좀 힘든가보구나;; 역시 어느 정도는 자리가 사람을 만드나보다
    그게 웃찾사에서 나온 말인줄은 아는데 사실 실제로 티비 본 적은 없다는;
    난 한국티비프로보다 미드가 더 재밌어... 은근 중독성있다 =_= 생활의 활력소!
    아. 어제 하루가 정말 너무 비참하고 힘들었는데 이제 좀 살아났다
    뜯어보면 별 거 아닌 일들이 모이고 모이고 쌓이면 너무 무겁게 다가와. 그걸 알면서도. 힘겨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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