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스테디셀러나 추천도서목록에 심심찮게 오르는 녀석이지만,
그러면서도 아직까지도 읽을 생각을 안 해 보고 있었다.
뭐랄까. 별로 손이 가질 않았다. 제목이 너무 평범해서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를 한참 좋아하던 시절, 상실의 시대를 읽다가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친구가 되어도 좋다"
라는 구절을 보면서 언제 읽어보긴 해야겠네... 이랬던 게 몇년 전.
인연이 되려는지, 중도에서 다른 책 열심히 고르다가 마침 책트럭 위에 정리되려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게 눈에 띄어 냉큼 집어왔다.

읽으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듣던 소문만큼 지루하지는 않았다는 것.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이 책이 좋다고 해서 읽었는데
정말 재미없었다고 그래서 약간 겁났었는데...
막상 이 책 바로 전에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읽다가 너무 힘겨워서 덮었기 때문에, 그 책에 비하면야 뭐.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리인데 그 인상주의 책, 정말 나하고는 안 맞는 듯 싶다.
나도 왠만큼 자의식 강하고 공상 몽상 망상 잘하는 사람인데 울프 여사는 못따라가겠더라.
여튼. 개츠비 이야기는 술술 잘 읽혔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하루키의 책과 약간 통하는 면이 있다.
아마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가 조금 시간적으로 차이가 나서 그렇지,
둘 다 그들이 겪었던 시대의 현실을 한 개인을 들여다보며 있는 그대로 풀어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다만 하루키의 경우에는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대이므로 조금 더 크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약간 다를 뿐.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여 내가 판단을 유보하는 행동은 결국 인간이 저마다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생각이나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든 너와 똑같은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네가 누구를 비난하고 싶을 때엔 네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다른 사람들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거라."
"그렇게 우리는 물살에 휩쓸려 가면서도 계속 노를 저어 과거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번역도서는 원작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번역자의 솜씨도 무시할 수 없다. 같은 원작이라도 어떻게 옮겼느냐에 따라 분위기도 느낌도 확 달라지기 때문. 그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아저씨도 번역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그토록 중요시 여겼나보다. 그러니까 난 댈러웨이 부인에서 손을 뗀 게 어쩌면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원래의 느낌을 많이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거다. 아니면 영어로 쓰였을 땐 운율과 라임 등등이 맞아떨어지던 작품이 한국어로 바뀌면서 그 장점을 다 잃어버렸다던가(반지의 제왕 같은 책과 같은 운명으로...) 내 능력이 아직은 부족했다는게 더 맞는 이야기 같지만서도.

여기서부터는 책 뒤편의 해설.
1920년대는 미국 역사에서 대변화의 시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미국은 유례 없는 번영을 누리게 되었고,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사람들은 정신적인 가치보다는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쪽으로 흐르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전통적 가치의 붕괴와 기존 질서의 파괴,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는 청교도적인 삶에 젖어 있던 미국의 젊은이들을 정신적, 도덕적으로 타락시켰다. 작은 시골에서 대도시로의 대규모적인 이주 현상이 일어났고, 젊은이들은 성(性)의 해방을 부르짖었으며, 1920년 1월에 통과된 금주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개되는 등 한마디로 시대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부를 추구하는 물질주의와 술, 섹스, 재즈로 대변되는 쾌락주의가 사람들의 정신과 영혼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식민지 국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문학의 경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유럽적인 경험과 유럽의 작가들에 의해서만 훌륭한 문학 작품이 탄생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문학 풍토에서 1920년대를 전후하여 등장한 작가들은 미국적 경험에서도 위대한 문학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낙관적인 태도를 지녔다. 그들은 헤밍웨이, 포크너, 도스 페서스, 피츠제럴드 등이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이라 불리오는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유럽 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정열과 자아의식을 가지고 각각 독특한 기법과 문체를 실험하며, 미국적인 문학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그들 작가들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과거의 전통을 거부함으로써 그 근원이 상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1900년 전후에 출생,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에 입대하여 전쟁을 체험하고, 전쟁의 파괴성, 폐허성, 무의미성, 무자비성 등을 통하여 인생의 방향을 잃게 된 젊은이들이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피츠제럴드는 당시의 방탕하고 무질서한 생활 뒤에 깔려 있는 미국인의 이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미국인의 정신적 기조(基調)가 되어 온 이상(理想)은 미국이란 나라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하나의 꿈이었다. 1620년, 청교도인들은 메이 플라워(May Flower)호를 타고 신세계에 도착하면서 새로운 땅에 그들의 낙원을 건설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미국은 정신과 물질의 행복을 약속해 주는 희망의 나라였다. 신세계의 이주민들에게 미국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땅이었으며, 그들은 새로운 자유를 얻게 되었다. 구속과 압박이 없으며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는 신세계에서 초기 미국인들은 그들의 이상과 물질의 조화를 이룬 이상향을 건설하려 했는데, 이것이 바로 '아메리카의 꿈'이다. 아메리카의 꿈이란 모든 사람에게 충족된 생활을 줄 수 있는 약속의 땅에 대한 꿈이며, 인간성을 억압하는 제반질곡에서 벗어나서 인간으로서의 최대의 성장과 행복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꿈이다.
그러나 미국이 산업 시대로 접어들면서 아메리카의 꿈은 이상주의적인 성공보다는 물질적인 성공으로 기울어졌고, 이런 변화는 20세기 미국의 물질 문명의 발달로 가속화되었다.

개츠비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가운데 정신적 빈곤과 도덕적 타락으로 가득 찬 시대 속에서 '데이지'라는 하나의 이상을 갖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이상주의적인 인물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당시 미국 사회의 현실과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서, 1920년대의 황폐한 현대 물질문명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매우 통렬한 비극성으로 보여주고 있다.

개츠비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 빈곤과 도덕적 타락으로 가득한 시대풍조 속에서 데이지라는 하나의 이상을 갖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이상주의적인 인물이며, 그의 꿈은 톰과 데이지가 대표하는 물질주의에 의해 좌절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좌절은 곧 '미국의 꿈'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2005/12/07 18:41 2005/12/0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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