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대하여 :: 2005/11/15 17:29

세란극회 윤태호 선배님이 쓰신 글.

어떠한 연극일지라도 연기의 중요성을 배제하긴 힘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연극을 볼 때에도 우린 연기에 대해서만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연극을 구성하는 것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 중 하나이고 누가 무엇을 연극으로 생각하건 간에 연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가장 큰 관건이 될 수 있을 거다.

연기라는 녀석은 정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오묘한 예술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연기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그렇다고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붙이며 연기를 마치 아주 고귀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도 아니될 것이다.

연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처음 연기를 하게 된 얘기를 해볼 수 있겠다. 신입생 시절 세미나를 하는 데 셰익스피어의 햄릿이었고 내가 맡은 역은 클로디어스였다. 나는 무대위로 올려졌고 아니 그전에 캐릭터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히스토리라는 걸 썼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캐릭터에 몰입하라는 연출형의 주문과 대사를 쳐야하는 것, 말투, 그리고 캐릭터 그자체...이모든 것이 어떻게 같이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몰입을 하게 되면 그건 바로 내가 그 상황에 빠졌다고 가정하고 그 감정을 느끼며 반응이 나오는 대로 표현하는 게 아닌가...그런데 이런 이상한 말투를 쓰면서 목소리도 크게 내면서 동작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걸 어떻게 해낸단 말인가?...어쨋든 혼란 속에 세미나는 올라가고 난 대사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채 애드립으로 겨우 겨우 버티다 내려왔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게 그래도 즐거웠다. ^^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부분이긴 하지만 난 거기서 먼가 힌트를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대사중에 "폴로니어스는 어딨느냐?"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폴로니어스를 살해하고 은폐한 햄릿을 추궁하는 대사였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난 화나는 감정과 말투와 발성과 버럭 소리지를 때의 관객들의 조용해짐을 기억한다. 그 모든것이 동시에 일어난 것인지 순서를 두고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연기를 하는 순간에 우린 수없이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그리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잘 해낸다. 하지만 물론 이러한 연기의 원리와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재능이상의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피터 브룩이 연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용한 예를 나도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줄타기를 하며 곡예를 부리는 곡예사가 있다. 이 곡예사는 절대 줄에서 떨어져서는 안된다. 그리고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줄위에서 멋진 곡예를 부리고 포즈를 취해야 한다. 능숙하지 못한 곡예사는 가끔 줄에서 떨어지거나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능숙한 곡예사는 언제나 줄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연기는 크게 감정과 표현 두 흐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구분은 연기를 넘 단순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며 두가지중 한가지에 치중한다느니 두가지를 동시에 추구한다느니 모두 맞지 않는 말같다.

물론 연기를 말로 표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게 말이라는 표현도구의 한계땜인지도 몰겠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렇게 연기를 나누어서 인식하는 것은 분명히 좋지 않다는 것이다.

연기에 있어서 단한가지의 진실은 연기는 무대행위라는 것이다. 모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한다고 가정했을 때 관객앞에 무대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면 그것은 연극의 연기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돗자리 하나를 펴놨다 하더라도 관객이 그걸 무대로 받아들이고 배우도 그것을 자신의 공간으로 인식했을 때 비로소 연기는 시작되고 연극도 성립한다.

연기라는 건 무대위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의 대상은 물론 관객이고...관객의 감정을 움직이고 이성을 움직이고 만족감을 주는 것이 바로 연기이다. 그러기 위해 배우는 캐릭터를 표현하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하기도 한다.

그럼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이 흔히 생각하는 연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아직도 멀었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에도 우리가 연기라고 부를만한 것이 아닌 많은 것이 존재한다. 감정의 절대적 몰입이라면 영화나 티비에서 볼 수 있고 서커스의 광대나 감정이 없는 인체 오브제나 서사극이나 부조리극의 연기등이 있겠다.

이런걸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작품이 주어졌을 때 연기에 선입견없이 그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배우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의 몸을 가장 적절한 위치에 둘 줄 알아야 하고 겉보기만으로 무엇을 표현하는줄 알아야 하며 자신의 연극과 거기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이해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감정과 표현이 중요하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단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배우는 무대에 올라 내려오는 그 모든 순간이 연기이다. 쉽게 말하면 연출이 하라고 하는 것을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이 연기이다.


연극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혹은 경험있는 배우들을 보면 그들이 한계와 막닥뜨리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요즘 연습하는데를 가보면 언제나 연출과 배우, 기획의 분위기는 험악하다. 연출은 항상 배우들에게 왜 변한게 없느냐고 하고 기획은 타고 있고 배우는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있다.

내가 예과 1학년때도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잘 안되고 있는데 먼가는 해야겠고 하지만 멀해야 좋을 지 모르겠고 그럴 때 주위사람들이 힘들어 하는게 보기 안쓰러웠다. 그래서 연극이 끝난 후 난 연극을 보러다니고 책을 읽고 하면서 날 갈고 닦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다시는 늪에 빠지고 싶지 않았으니깐....

그래서 연출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쨋든 이 얘기는 난중에 하기로 하고...

배우의 연기가 정체되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음...근데 사실 난 내 배우들을 보면서 정체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세히 보면 미세한 변화가 언제나 있고 난 그거라도 즐기며 연출을 할 수 있었다. 다만 퇴보는 있다. -.-;

일단 배우의 기본기가 늘어야 한다. 대배우는 무대에 서있는 것만 봐도 딱 알 수 있고 아무리 넓은 광장에 홀로 서 있다 해도 빛을 낸다. 그것은 엄청난 집중력과 사심을 비우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는 걸 말한다.

그리고 동작하나하나 손짓, 눈짓이 아주 정확하고 감정을 가장 적절히 표현해 낸다. 그리고 동작이 경쾌하고 템포가 있으며 크다...귀를 막고 봐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지저분한 의미없는 움직임과 필요없는 데 두는 시선, 꿈틀댐, 발을 땅에 가만히 붙이고 있지 못하는 것등이 초보의 연기다.

발을, 다음 발을 옮길 타이밍까지 참고 있지 못하고 뗏다 붙였다 하고 있는 것은 감정을 자신이 주체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말해준다. 집중이 흐트러 지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상황에 몰입되면 될수록 잔동작은 없어지고 관객은 그 배우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발성과 음색과 화법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연출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늘어야 한다. 자기의 캐릭터에 대한 의견 차이는 없는지, 장면에서의 역할에 대한 오해는 없는지.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동선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연기를 하다보면 처음엔 몰랐는데 자신의 동선이 연기하기에 엄청 불편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캐릭터가 변하고 있다거나 동선이 잘못되었거나 둘 중 하나겠다. 연출은 배우에게 연기하기에 불편한 데는 없는지를 항상 물어봐야 할 거고 배우도 그런 야그를 연출에게 야그해야 할 거다....

대사가 다 똑같이 들린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연기를 만들어 나갈때 상황속에 캐릭터를 집어넣을라구 하면서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캣취한게 아니라 기술적으로 연기를 만들어 나갔기 때문이다. 대사를 여기선 어떻게 치고 여기의 감정은 어떻구 하는 식으로 연기를 맹들어 봐야 대사는 같게 들리는 수가 많다.

상황을 좀더 느낄라구 해야 한다. 그러면 무대에 올라가 있는 동안 1초도 아쉬워서 열심히 연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마음을 비워야 한다. 절대 다음 대사나 연기를 생각하지 마라...대신 상대방의 말을 듣던지 관객의 반응에 반응해라...상대방의 말이 들리면 비로소 대사가 똑같이 들린다는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2005/11/15 17:29 2005/11/1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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