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에서의 세례식 :: 2006/04/27 00:33

2006. 4. 9.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세례성사를 받았다. 부활 대축일 한 주 전.
덕분에 그 다음주에 새병원 예배실에서 있었던 부활특전미사때 영성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

이날은 본1의 3일+1시간 완성 인체발생학 중간평가 전날이었고,
본2의 분기말이 코앞에 다가와 있던 날이었다

나는 전날 예행식때도 이날에도 카네기 스테이지를 들고 가서
틈만 나면 정신없이 발라대고 머리에 우격다짐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처음에는 많이 아쉬웠다.
일생에 한번 있는 세례식인데 좀 더 성스럽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을 수 없을까 하고.
한 달 뒤에 다른 반이랑 같이 받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더 이상 기다리기엔 내 인내심이 조금 부족했다



앗 이건 언제 찍은거? 원래 미사중에 사진 찍지 말라 그랬는데...
라고 해서 못찍을줄 알고 서운했는데 이렇게 찍어주다니 고마워 ㅎㅎ




같이 세례받은 10월 목요반 토요반 사람들.
맨 아랫줄 가운데 신부님 오른쪽에 앉으신 분이 우리반 담당이셨던 효주아녜스 수녀님이시다
이번이 첫 교리반 수업이라면서 맨날 부끄러움 타시고 ^^
한번은 교리반 담당하시는 신부님이 수업참관 하려고 오셨는데
수녀님이 "저 신부님 계시면 부끄러워서 수업 못해요" 막 이러셔서
결국 신부님은 수업을 못보시고 그냥 가셔야만 했다ㅋ
항상 소녀같은 모습을 보여주셔서 좋았던 수녀님.
내가 성서필사 일등했을때 선물로 팔찌묵주를 직접 만들어 주셨는데
나중에 우연히 내 팔찌묵주가 조금 커서 헐거운 걸 발견하시고는
다시 또 만들어서 주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세례식때 선물받은 묵주팔찌 하고 있지만  예전이 수녀님이 주셨던 것도 소중히 간직중...



우리 대모님, 소영 다니엘라!
처음에는 정원이에게 대모를 부탁했었는데,
명동성당에서 대모는 나이가 대녀보다 더 어리면 안된다고 해서
급하게 소영이에게 부탁했는데 선뜻 들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
(그리고 정원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ㅜㅠ 견진성사 때는 어떻게든...)
길었던 6개월 예비신자 교리과정 지치지 않게 잘 이끌어줬고
이날 나보다 더 기뻐해줬던 대모님. 고마워요 ♥



엄마도 세례식에 와주셨다
나랑 엄마랑 세례식날 정말 펑펑 울었다
난 이런저런 생각에 북받혀서 그랬는데 울 엄마는 왜그러셨을까나.
사실 엄마는 예전에 종교에 대해 약간 부정적이셔서 좀 걱정했는데
요즘은 나랑 아빠랑 성당 다니는거 많이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
음. 기회를 봐서 엄마도 성당으로 이끌어야지...;;;




세례식날 명동까지 와준 고마운 친구들! 분기말이라 오기도 힘들었을 텐데...
미나상, 정원, 승민이, 우순이, 겜메 그리고 울 대모님 모두 고마워요 ^-^
사실 아무도 안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었다는 ㅋㄷ
아. 디카 빌려준 겜메 특별히 더 감사 ^^;
내 동생이 내 디카 빌려가서는 자기 친구 빌려줬다 그래서 정말 황당했다; 나한테 말도 안하고;;
이날 기대치 않았던 꽃도 선물도 너무 많이 받아서 너무 행복했다
하나는 내 가방에, 하나는 손목에, 그리고 나머지는 내 책상에 놓여 있다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선물까지... 감동이야 ☆
선물들 사진 찍었는데 아직 카메라에서 안옮겨서...
기회봐서 언젠간 올릴테다 ^^;


세례식이 끝나고 커피숍에 가서 같이 점심먹고.
나랑 소영이랑 점심을 못먹어서 많이 배고팠는데
토스트는 정말 어찌나 늦게 나오던지...
다들 "밀을 키워서 밀가루를 직접 만드는건가봐" 막 이러면서 웃었다ㅋ
사실 더 근사한 걸 사고 싶었는데 나랑 소영이빼고 다들 점심 먹고 왔다고 그랬다;;
하긴, 그때 시간이 몇시였니 -_-
포도모임때라도 맛있는거 사갈게~ 히히


지금부터는 내가 안선영 마리 세라피나가 되기까지의 behind story.

내가 처음 주일미사를 간 건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하긴, 우리때까지는 국민학교였다. 내 졸업앨범은 국민학교라 찍혀 있다)
외가쪽이 모두 카톨릭신자라서 어릴 적 외할머니 손을 잡고 주일미사에 따라가곤 했다
외할머니는 항상 오백원짜리 동전을 쥐어 주셨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앞에 나가서 바구니에 그걸 넣고 왔던 기억이 난다

특이하게도 외갓집에서 우리 엄마만 비신자이셨고 (지금도 그러시고;;)
아빠도 종교가 없으셔서. 내가 어릴적에 엄마아빠는 내가 신앙을 갖는 걸 반대하셨다
어릴 때 주위사람들에게 휘둘려(?) 종교를 갖기 보다는
내가 좀 더 큰 다음에 내 스스로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거다
그 땐 반대하는 부모님이 미웠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말 맞는 말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정신없이 바뻐서 주일미사 같은 건 까맣게 잊어먹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다시 미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가톨릭 동아리에 들어갔었다. 사실 동기는 좀 불순했다.
성당이 시내에 있어서 주일에 학교에서 성당까지 태워다주는 봉고를 타면
편하게 시내에 나갈 수 있었고 -__-;;;;;
그리고 주일에 미사나 예배에 가는 사람들은 아침 자습을 빼먹을 수 있었던 거다 하하;

아냐. 난 그래도 나름 열심이었다
비록 중간에 그만두긴 했지만 통신교리도 듣고
성탄절이면 애들이랑 같이 성극도 하고 그랬었다
(그러고보니 난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했었구나 ㅎㅎ)
하지만 통신교리는 한 두번인가 남겨두고 그만뒀다
머리에 지식은 늘어가지만 내 스스로 신앙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기에...

그리고 재수하면서 청담동 성당에 몇 번 갔었는데
대학 들어와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고딩때는 대학 가서 시간 나면 꼭 세례 받아야지! 이래놓고선
막상 힘들게 대학 들어오니 그저 놀고만 싶었나보다
무엇보다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믿고 있는 걸까? 하는, 수없이 떠오르는 의문.

먼 길을 걸어왔지만, 그게 결국 주님의 뜻이었다.

첫 영성체때의 기도는 꼭 들어주신다지...
정말 소박하지만, 정말 간절한 기도를 드렸었다
막상 안이뤄진거 같다고 몇 번 실망도 했었지만
항상 주님의 뜻은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닫는 거 같다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쪽으로 들어주신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주님. 감사해요. 열심히 신앙생활 할게요 지켜봐주세요 ^^
(비록 분기말 시험본다고 벌써 미사를 빼먹기는 했지만요;)

마지막 덧붙임, 내 세례명 seraphina에 대한 의미.
원래 seraphim은 대천사 이름이기도 하지만, 난 이탈리아의 성녀 세라피나를 택했다.
이유는..... 비밀.
해석할까 하다가 괜히 어설프게 번역하면 의미 전달에 제대로 안될까봐 그냥 둔다.

ST. FINA (SERAPHINA) March 12
Born at San Geminiano, Tuscany, Italy
Patronage of disabled people, handicapped people, physically challenged people, spinners

Fina was born in a little Italian town called San Geminiano. Her parents had once been well off, but misfortune had left them poor. Seraphina, or Fina, as her family called her, was their daughter. Fina was pretty and lively. She had a generous nature. Each day she saved half of her dinner for someone in the town poorer than she. During the day she sewed and spun cloth to help pay the family debts. At night, she usually spent a long time praying to Jesus and Mary.
When she was still quite young, her father died. Fina was struck with an illness that deformed and paralyzed her. Movement became almost impossible and Fina lay for six years on wooden planks. Pain rushed through her whole body. The only way she could bear it was to concentrate on Jesus as he was nailed to the cross. "I unite my sufferings to yours, Jesus," she would whisper. Sometimes, when the pain was horrible, she would say, "It is not my wounds but yours, O Christ, that hurt me." Fina was left alone for many hours every day because her mother had to go out to work or beg. The neighbors knew about Fina, but her sores had become so foul-smelling that people made excuses for not going to visit her.

Unexpectedly, Fina's mother passed away. Now the girl was left alone. Only one neighbor, her good friend Beldia, came to care for her. Beldia tried to give Fina as much attention as she could, but Fina was usually left alone. It was obvious that she could not live much longer. She refused to lose heart. Someone mentioned to her about the tremendous sufferings St. Gregory the Great had endured. Fina became devoted to him. It is said that one day, as she groaned in pain, St. Gregory appeared to her. He said kindly, "Child, on my feast day God will grant you rest." His feast day in older calendars had been celebrated on March 12, because he had died on March 12, 604. So on March 12, 1253, St. Gregory came to take Fina home to heaven.

St. Fina helps us appreciate the Christian meaning and value of suffering. We can also realize the value of visiting shut-ins, the elderly, the ill. We can ask St. Fina to give us a sensitive heart for people who are lonely or suffering.

2006/04/27 00:33 2006/04/2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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