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는 학교 :: 2005/12/04 02:39


새벽에 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밤 12시에 나가서 한시간이 넘게 학교를 걸었다
하얀 눈에 포근히 덮인 백양로와 본관 주위의 오래된 건물들...





백양로 입구. 어느새 노란 은행잎도 다 떨어지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눈이 쌓였다.
헐벗어 보여서 싫었다가도, 눈에 포근히 쌓인 모습을 보니 또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이상하게 하늘이 다 발그스름하게 찍혔다. 푸른색이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지만 사진에 대해 아는 바 별로 없으므로 패스-*





공학원 앞에 있는 바위와 소나무.
눈이 겹겹이 쌓여서 자태가 근사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절개를 지키는 소나무...
뭐 교과서에 나올 법한 그런 모범적인 글귀가 생각나는 순간.
찍어놓고 보니 정말 도덕교과서 삽화로 들어가기 딱 좋게 생겼네;





추운 날씨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독수리상.
(하긴 동상이 춥다고 어디 날아가겠어;;)
저렇게 담아 놓으니 꽤나 멋있어 보인다.
저걸 뽑아서 옆에 있는 한글탑 구멍에 꽂으면 중도 건물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숨겨진 무기?가 나온다는,
카이스트의 마징가탑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전설과 함께 하는 독수리상.





눈쌓인 언더우드관. 언더우드는 항상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담아 보려 해도 그냥 평범한 모습만 보여준다.
연세대 처음 와서 기념사진 찍는 날부터 맨날 그랬다. 포기;;





본관에서 내려다본 백양로. 하얀 나무에 하얀 눈이 쌓이니 색다른 맛.
학교 정문에서 백양로를 길게 내어다보는 사진을 담고 싶었는데
정문이 본관보다 한참 아래쪽이라서 본관 모습이 잘 보이질 않는다
학교 달력에 있는 그 멋있는-백양로의 끝에 본관이 근사하게 자리잡은-사진은 대체 어떻게 찍은거지??





눈꽃이 너무 예뻤다... 아래쪽 개나리 덤불에 묻힌 눈꽃들.
가지 끝마다 솜털이 보송보송 피어난 것 같아서 만져보고 싶어졌다
만지면... 그냥 허무하게 녹는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본 세브란스.
아마 많은 이들이 월요일 시험을 대비해 남아 있었을 그곳...


옷에는 눈이 그득히 쌓이고,
운동화와 양말이 젖은 줄도 모르고 다니다가 발이 얼고,
카메라도 눈에 맞아 수난을 당했지만,
그래도 눈발이 흩날리는 밤에 보는 학교의 모습은 황홀했다

눈이 내려서 아름다운 건, 추한 것들을 감싸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눈발이 흩날리는 밤에는
노래부르며 휘청대는 중년의 아저씨들도,
길모퉁이에 서서 투닥거리는 연인들도,
술에 취해 걸어가는 청년들도
그저 삶의 한 장면으로 승화되어 추억으로 스쳐 지나갈 뿐...
깊게 뇌리에 새겨보기 전에 눈송이들에 가려 아름답게 미화된다
그래서일까, 눈이 오는 밤은 마법에 걸린 듯 이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도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2005/12/04 02:39 2005/12/04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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